[해직 언론인 이야기] ‘낯섦’과 ‘단절’을 넘어_뉴스타파 현덕수 기자

다시 ‘월화수목금토일’의 세계로 돌아온 것은 1년 하고도 두 달 전이다. 2008년 10월 YTN에서 해직되고 꼭 6년 반이 흐른 뒤였다. ‘뉴스타파’라는 매일 출근할 곳이 생겼다는 긴장감과 아이템 기획회의의 낯섦이 채 가시기도 전에, 취재 지시가 떨어졌다. MB가 자서전을 낸 것이다. ‘대통령의 시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에 많은 일을 했다. 아니, 저질렀다. 4대강, 자원외교, 언론장악… 그래서 자서전에 담을 내용도 많았나 보다. ‘대통령의 시간’은 MB실용정부 5년간의 치적을 자화자찬으로 채워놓았다. 모름지기 국가수반의 자서전은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6년 반 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내게 주어진 첫 취재 아이템은, MB자서전 중 ‘자원 외교’에 대한 팩트 체크였다. 그로부터 3주 뒤,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공약 이행을 점검하는 취재 아이템에 참여했다. 해직 언론인이자 뉴스타파 진행자인 최승호선배가 묻고 역시 해직기자이자 뉴스타파 기자인 내가 답하는 방송 풍경도 그려졌다. 어쩌다보니 80년대 민주화이후 언론인 대량 해직의 빌미를 제공하고, 그런 해직이 길게는 8년 가까이 이어지게 하는데 기여한 두 전,현직 대통령을 평가하는 아이템으로 언론 현장에 돌아왔다.

‘데일리 뉴스’에서 ‘탐사보도’ 기자로 복귀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났다. 방송기자연합회로부터 근황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무엇을 써야 하나?’ 고민하다 보니 지난 1년여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뉴스타파에서의 지난 1년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쟁쟁한 선후배들이 있어서 그냥 언론계 ‘짬밥’으로 밀어붙일 만 한 곳이 아니었다. 한편으론 그 ‘짬밥’때문에 취재 경험이 많을 거라며 위에 썼던 것처럼 오자마자 아이템을 맡겨 다소간의 ‘황당함’도 맛봤다. ‘6년 반’이라는 공백과 어색함을 누그러뜨릴 말미를 바라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것은, ‘데일리 뉴스’를 하던 방송기자에서 ‘탐사보도’를 하는 방송기자로의 전환이었다.

해직되기 전 YTN에서의 14년은 출입처와 편집부를 오가며 하루, 하루 매번 답안지를 써내듯 기사를 쓰고 방송을 했다. ‘답안지’를 써낸다는 것은 나의 YTN기자 시절의 압축된 표현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보도 자료가 나오고, 보충 취재를 하고 난 뒤 스트레이트 단신을 쓴다. 주목도 높은 사안이거나 기삿거리가 별로 없는 날이면 단신 기사는 전화 연결과 리포트 원고로 확대된다. 가끔은 중계차 연결로 방송에 참여하는 날도 있었다. 대부분의 기사는 하루 단위로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 그 하루를 쪼개 단신, 전화 연결, 저녁 리포트, 필요에 따라선 다음 날 아침용 리포트까지. 이런 패턴은 때론 한 달 넘게 지속되는 검찰 수사나 협상 추이에 따라 좌우되는 통상 정책 관련 기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저녁에는 다른 방송사들을 모니터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조간신문을 들추면서 내가 쓴 답안과 그들이 낸 답안을 비교하곤 했다. 특히 YTN은 속보 중심의 뉴스채널이었기에 대부분의 경우 경쟁사가 쓴 답안을 참고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14년을 보냈다.

탐사보도가 뭔지 모르는 늙다리 기자
그리고 노조 전임 2년과 해직 6년 반, 그렇게 8년여 만에 취재 현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탐사보도’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1년이 지났지만, 누군가 내게 ‘탐사보도’가 뭔지 정의해달라고 하면 딱히 설명할 요량이 없다. 다만, 1분 30초를 기준으로 했던 리포트 길이가 6~7분으로 늘었고, 덩달아 취재 기간도 길어졌으며, 팩트의 나열뿐 아니라 전후 맥락에 대한 설명과 분석이 추가되고, 오디오 녹음이 꽤 길어져 무척 숨이 차다는 점이다. ‘출입처’가 따로 없어 ‘보도자료’ 대신에 ‘취재거리’를 찾아내야 한다. ‘데일리 뉴스’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 취재가 시작되기도 하고, 공식 취재원을 만나기조차 쉽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한편으론 취재경력 단절에서 오는 낯섦과 어색함이 발을 무겁게 잡아끄는 때가 있기도 했다. 그래도 영민한 후배들의 도움으로 지난 1년간을 어찌어찌 무탈하게 보낸 것 같기도 하다. 권력자와 유착된 자원외교 과정을 들추어내고, ‘종북, 사이비 기자’라는 말을 들어가며 상이군경회를 취재하고, 국정교과서와 민중총궐기 대회 취재 과정에도 함께 했다. 전혀 다른 형식의 취재와 보도가 부담이었지만, 그것을 통해 현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못난 선배가 되지 말자’
극히 사실적으로 만들어 호평을 받은 영화 ‘Spotlight’를 보면, 보스턴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역시 뉴스타파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지역사회의 이방인이어서 오히려 더 객관적일 수 있는 새 편집국장의 취재 지시는, 출입처가 없음에 더욱 시각을 객관화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보도 자료가 없어서 그동안 간과했었던 우리들 주변의 제보자와 내부자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폭넓은 저변 취재와 이를 종합한 설득력 있는 가설 설정, 그리고 내부자를 통한 최종 확인은 언론 본연의 모습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들 중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일까?’ 하는 하릴없는 상상에 빠졌었다. 취재 능력이 아니라 연공서열이라는 전근대적이고 단순한 방식을 따르면, 아마도 마이클 키튼이 열연한 윌터 로빈슨 팀장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는 편집국장과 현장 기자들 사이에서 후배들을 도와가며 취재의 완급을 조절하고, 내부자의 확인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영화 속에서 닮고자한 그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8년여의 취재경력 공백에서 오는 취재원과의 단절 후유증 등으로 능력이 딸려도 한참 딸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나온 세월이 아쉽지만은 않다. 내게 주어진 ‘해직’의 굴레를 감내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 자체가 언론 환경과 언론 공정성의 ‘상징’이 돼 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작고한 신영복 선생의 글씨 중에는 ‘못난 선배가 되지 말자’라는 글이 있다. 자신의 위치가 선배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새겨야 할 글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후배들에게 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자긍심이 있다. 비록 ‘탐사보도’가 뭔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취재원도 변변치 않은 늙다리 기자지만,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열정’과 언론을 바로 세우는데 힘을 보탤 ‘의지’가 남아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도 집을 나선다.

Posted in 2016년 5.6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해직언론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