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_혁신보고④_3초라는 세계_YTN 서정호 팀장

모바일의 3초는 TV의 30초다. 3초는 감각의 세계다. 감각은 이미지 전회(pictorial turn)를 수반한다. 모바일 혁명 이후 감각질의 정념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자투리 시간에도 할 것, 볼 것이 많아졌다. ‘나’는 손가락 끝에도 있고 동공 끝에도 있다. 그런 의미로 나는 가상 세계에도 존재한다. 내가 많다는 것은 내 존재가 옅어진다는 말과 같다. 소외된다는 뜻이다.
모바일 세계에 정규전은 없다. 오직 게릴라전뿐이다. 적군은 사방에 있다. 위에도 있고 아래에도 있으며, 피안에도 있다. 뭔가 번듯한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다. 이 세계에 번듯함은 없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번잡함이 있고, 유토피아라기보다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세계가 있다.
그럴진대 저널리즘? 글쎄. 모바일 세계에는 오직 다중의 쾌, 불쾌만 존재할 뿐이다. 다중의 리비도는 시각적 자극, 엿보기, 가십 등에 정주한다. 믿을 수 없다면 당신의 모바일 소비습관을 들여다보라. 그것이 우리의 확대이고 다중의 행태다.
우리 고민은 그곳에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천박한 팝콘 브레인 사회에, 사용자들의 이목을 집중 시킬 수 있을까? 게다가 온전한 저널리즘의 가치를 덤으로 얹히면서 말이다. 어렵다. 하지만 답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뛰기도 했고 걷기도 했다. 성공도 했고 실패도 했다. 그러면서 보잘 것 없는 노하우란 것도 생겼다. 지난 1년 사이,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할 만 한 프로젝트 3건의 경험을, 부분적으로 나눠보고자 한다.

YTN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첫 번째, 제보. 제보는 YTN의 강점이 두드러질 영역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모바일 제보 CMS(콘텐츠 관리 시스템)를 구축했다. 또 일관된 보상, 기민한 대응, 재빠른 편집이라는 워크플로우도 함께 적용했다. 서비스 후 1년이 지났다. 현재 YTN 모바일 제보 CMS로 들어오는 제보 수는 주당 400여 건. 그 대부분은 사진과 동영상이다. 한달이면 1,500여 건이 넘는 제보가 들어오고, 1년이면 20,000여 건에 가까운 제보가 수신된다. 우리는 펄쩍펄쩍 뛰는 날생선 같은 사용자 영상을 기반으로 하여, 사건사고와 미담을 선별해 ‘제보영상’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제보영상은 본방은 물론이고 포털과 페이스북 등에 서비스됨으로써 크로스미디어를 구현했다. 그 가운데 페이스북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제보 영상은 적게는 수십만 명, 많게는 수백만 명에게 손쉽게 도달했다. 댓글 수 역시 수백, 수 천여 개가 어렵지 않게 달렸다. 플랫폼과 콘텐츠를 양면시장 구조에 입각해 적용시켰던 것이 외부적 네트워크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는 셈이었다. 콘텐츠의 차별화는 서비스의 차별화를 불렀다.

페이스북: 그 드라마틱한 성장세
두 번째, 페이스북. 콘텐츠가 서비스의 차별화를 부른다는 사실을 경험한 우리는, 사용자 차별화를 본격적으로 꾀했다. 온에어는 온에어다. 그 외는? 코드커팅1)과 코드네버2) 등이 현실화되는 시점, 젊은 시청자들은 어디로 떠났나? 부분적으로 페이스북이다. 우리는 한동안 페이스북에 집중하기로 했다. 전략을 짰다. 스터디를 했다. 무중단 서비스를 위해 근무시스템과 R&R3)도 새롭게 수립했다. 2014년 10월, YTN 페이스북 구독자 수는 3천여 명에 불과했다. 처참한 수치였다. 그러다 1년 반이 지난 2016년 4월, YTN 페이스북 구독자 수는 30만 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드라마틱한 성장세였다. 뿐만 아니라 PIS(Post Interaction Score)로 불리는 사용자 참여지수는 국내 전체 언론사 가운데 압도적인 1위를 유지했다. 국내 페이스북 계정 전체를 통틀어서는 대여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일각에서는 YTN이 페이스북 사용자를 돈 주고 샀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돌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용자 참여도는 어떻게 된 말인가?

블랙박스: 신선한 시각을 선사하다
세 번째, 블랙박스. 국내에 보급된 차량용 블랙박스 설치 수는 약 700여만 개에 달한다. 지나다니는 차량 2대 가운데 1대는 지금도 블랙박스 영상이 녹화되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녹화 방식이다. 이게 비의도적이다. 비의도적이라는 말은 인위적이지 않다는 말인데, 그것은 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영상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영상이 탐났다. 우리는 모바일 제보 CMS 때와 마찬가지로 블랙박스 제보 CMS를 구축했다. 보상, 대응, 반응 등 워크플로우도 동일하게 만들었다. 모바일 앱도 만들었고 웹도 만들었다. 서둘렀다. 서둘렀던 이유는 단순했다. 싱글호밍4)전략을 선제적으로 구사하기 위해서였다. 서비스 후 몇 달이 흘렀다. 2016년 4월, 블랙박스 제보 CMS로 들어온 영상의 수는 주당 약 50여 개. 지난 석 달 동안 모두 700여 개가 넘는 블랙박스 영상이 수신되었다. 이 정도라면 한 해 약 3,000여 개가 넘는 블랙박스 영상이 수집될 수 있는 수치다. 블랙박스 영상은 추돌사고 외에도 재미와 반전, 훈훈한 감동의 이야깃거리도 가득해 사람들의 삶에 직접 들어갈 수 있는 신선한 시각을 선사하고 있다.
YTN은 지난 2014년 10월, 공채 1기 방송기자 출신의 강성웅 본부장을 주축으로 하여 디지털센터를 출범시켰다. 디지털센터는 보도국 방송기자와 필자인 방송 디자이너로 구성되었다. 우리는 디지털 업무를 개발·운영 대행하는 YTN PLUS로 파견 갔다. 그리고 그곳의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기획자 등과 함께 호흡했다. 동화되기 위해서였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디지털센터의 모바일 혁신에 대한 YTN·YTN PLUS 경영진의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디지털 3대 원칙’
디지털센터는 다음의 3가지 원칙을 중요시했다. 첫 번째, 모든 것은 브랜드의 확장이다. 아이덴티티는 일치되어야 하고 그것은 곧 일관된 브랜드의 경험(Brand Experience)을 사용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두 번째, 기획과 제작의 일치가 완성도를 높인다. 이 말은 기획한 사람이 직접 제작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기자라고 기획만 하겠다거나, 디자이너라고 제작만 하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발상이다. 그런 편협한 사고는 모바일 혁신을 외치면서 기둥 뒤에 숨어있겠다는 심보와 다를 바 없다. 모바일 시대의 혁신이란 기술이고 예술이며 동시에 서비스다. 12년 차 방송기자 출신의 권준기(디지털뉴스팀 팀장) 기자는 본인이 직접 포토샵과 프리미어를 배워 기획·제작·서비스한다. 물론 어렵다. 하지만 판을 뒤집겠다는 혁신에 쉬운 일이 어디 있나? 있다면 그건 혁신도 아니다. 세 번째, 열정페이는 이제 그만. 방송사의 가장 큰 착각은 디지털·모바일 쪽 혁신을 누군가 대신해 줄 것이란 생각이다. 오산도 이런 오산이 없다. 누구도 나서질 않는다. 그렇게 해서 양산된 행태가 바로 대학생·청년인턴제도를 활용한 디지털 비정규직 생산라인 구축이다. 책을 덮고 주변을 둘러보라. 적지 않은 방송사들이 대학생·청년인턴을 뽑아놓고 디지털·모바일 쪽 혁신을 짊어지게 한다. 더군다나 그들을 티슈처럼 뽑은 다음 휴지처럼 버린다. 부조리도 이런 부조리가 어디 있나? 그러면서 캐주얼한 서브 브랜드를 만들고 예쁜 액세서리로 치장시킨 다음 디지털 혁신 중이라고 자랑한다. 부끄럽지만 우리도 그랬다. 그러나 우리는, 그래서 그들 대부분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적어도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큰 그림에서는 혁신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낮게는 우리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였다.
정리하겠다. 앞서 언급했던 3초의 세계는, 맥루한의 주장에 대한 대유다. 맥루한은 1964년, 마르코니로부터 출발했던 전자 혁명으로 인해 텔레비전의 30초는 연극의 3분과 맞먹는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으로부터 50여 년이 흘렀다. 우리는 모바일 혁명으로 인해 3초의 세계에 산다. 모바일 쪽 콘텐츠의 섭취 여부는 대략 3초 이내에 결정된다. 무섭다. 이 세계의 말단에 소외가 살고 허무가 산다. 불안하다. 그래서 초조하다. 우리는 모바일 혁명으로 가속화된 팝콘브레인 사회에, 저널리즘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권준기 팀장과 아침마다 인상을 쓰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커피를 앞에 두고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숙고도 했다. 그런데 여태 모르겠다. 우리만의 숙제가 아닐 수 있어서다. 어쩌면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호혜적인 문제일 수 있다. 그걸 ‘모바일 리터러시’라고 불러야 하나? 인쇄술이 발명되었던 기계혁명의 시대, 장 마르뗑은 이렇게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는 자유의 선물인 이 엄청난 정보를 다루는 법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아직까지 생산하기만 했고, 또 소비하기만 했다. 뭔가를 배우지 못한 채 지나가고 있는 기분이다.

 

Posted in 2016년 5.6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_2016 한국의 뉴스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