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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요”

이탈리아로 떠난 음악 여행
지금은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중대한 요소 몇 가지를 차례로 꼽을 수 있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내 삶 속에, 우선순위 없이 모두가 중요했다. 어떤 음악 한 곡이 한 명의 친구만큼 중요했고, 여행 한번 다녀오는 일이 학교 시험 못지않게 중대한 일이었다. 중·고교 시절 역시도 내게는 입시 말고도 중요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가요 톱10>이나 라디오 공개방송 현장에는 빠지지 않고 출석했고, 숙제는 못 해가는 한이 있어도 당시 천리안에 격일로 연재하던 팬픽은 단 한 번도 마감을 어기지 않을 만큼 성실한 생활을 했다. 1세대 아이돌이었던 H.O.T., 젝스키스, 핑클, S.E.S.의 화양연화가 지나가고, 2·3세대 아이돌이 등장하면서 나 역시 찬란했던 ‘팬질’ 활동을 접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정말 마음잡고 공부를 열심히 해볼까 하던 차였다. “어이 신입, 너 라디오헤드 들어봤냐? 네가 음악을 아냐?”하고 다가온 선배들이 아니었다면, 학과 우수생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뒤늦게 들은 브릿팝BritPop의 세계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내가 고작 여의도를 오갈 때, 영국 글래스턴베리나 뉴욕 우드스톡 같은 데를 기웃거린 녀석들이 있다니! “난 형, 누나 어깨너머로 6학년 때부터 너바나Nirvana를 들었다.”고 으스대는 녀석들이 질투하며, 페스티벌 가보는 걸 인생 목표로 삼던 시절이 있었다.
음악을 계속 듣다 보면, 다른 장르에 관한 관심은 저절로 생겨난다. 좋아하는 밴드 The Verve의 ‘Bitter Sweet Symphony’ 같은 곡만 들어봐도, 맹렬한 기타 소리를 북돋는 오케스트라 연주에 호기심이 가고, ‘심포니’ 같은 근사한 말은 대체 뭔지 궁금해진다. ‘클래식 같다’고는 하는데 정작 클래식이라는 게 뭐지? 어떤 음악이기에 몇백 년의 시간을 이겨내고 살아남았을까? 클래식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뭔가 대단한 놀 거리가 있다는 걸 직감했다. 그때부터 나에게 클래식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선배들을 졸라 앨범을 추천받아 하나하나 듣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매년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2013년 그해에는 축제 100주년을 기념해 세계 4대 테너가 모여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클래식은 내게 ‘중요한 문제’이므로, 싼 비행기 표를 끊어서 냉큼 이탈리아로 떠났다. 어린 시절부터 쌓은 현장 경험(!)으로, 현장에서 듣는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견을 바꿔버린 그 날의 공연
검투사 경기장으로 쓰이던 대규모 원형 극장에서 제대로 클래식을 들었다. 100년 전 첫 공연 때 이 자리에 카프카, 푸치니, 고리키 등 당대 유럽 문화계 인사들이 앉아있었단다. 새파란 하늘을 지붕 삼은 무대의 막이 올랐고, ‘피가로의 결혼’ 서곡이 연주됐다.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무대 입구에서 나눠준 흰 수건을 흔들며 들썩거렸다. 아니, 공연장에서는 숨소리도 죽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들은 내가 가요나 팝송을 들을 때처럼 몸을 흔들고 리듬을 즐기고 있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가 이 곡을 설명한 대목이 떠올랐다.
“이건 단지 코미디예요. 부부가 2중창으로 싸웁니다. 갑자기 하녀가 끼어들어 2중창은 3중창이 되죠. 그때 시종이 끼어들면서 4중창이 되고. 연극에서는 스무 명이 떠들면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음악이 있는 오페라에서는 스무 명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게 되죠. 오페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요.”
클래식이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그 자리에서 깨끗이 씻었다. 결국 클래식도 소리의 향연을, 선율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음악인 거다. 그때부터 음악이 다르게 들렸다.
한번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다가 나른하게 잠들어버렸다. 그 곡이 바흐의 후원자인 카이저링크 백작이 불면증에 시달린 탓에 잠이 잘 오는 곡을 써달라고 해서 바흐가 작곡한 곡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나는 희열을 느꼈다(그래서 잠이 오는 거구나! 제대로 들었어!).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장송곡 ‘레퀴엠’을 많이 들었다. 아름답고 비장한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 묘하게도 죽음보다 삶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내게 ‘레퀴엠’은 죽은 자를 추모하는 노래라기보다 살아남은 자를 위로하는 노래처럼 들린다.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며 감미로운 피아노곡을 많이 쓴 쇼팽이지만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그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곡이다. 쇼팽이 러시아 지배하에 있는 폴란드를 떠나기 직전, 고향에서 가진 마지막 무대에서 이 곡을 직접 연주했다. 오케스트라 연주와 피아노가 곡을 이어받으며 서로 겨루는 듯 강렬하게 이어지는 1악장에는 긴장감이 넘친다.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긴장감을 조율하는 방법도 다르다. 당시 스물세 살이었던 쇼팽을 떠올리며 이 곡을 들으면, 음악이 그냥 귀를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클래식은 이렇게 들으며 사귀었다. 여기 꼽은 열 개의 앨범은, 내게 클래식만의 즐거움을 알려준 곡들이다.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음악들도 있다. 그만큼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는 곡들이다. 나 역시 모르는 곡이 수두룩하다. 당분간은 심심할 일이 없어 정말 다행이다.

Posted in 2016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나의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