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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 없이 들을 수 없는명반들

바흐 평균율 1권의 첫 번째 프렐류드는 씨앗과도 같은 곡이다. 작고 단순하다. 그런데, 그것에서 비롯된 음악은 커다란 나무와 깊은 숲이 되고 거대한 산이 된다. 교과서에서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른 것도 결국 이 작품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초보는 초보대로 고수는 고수대로 듣고 또 들으며 끝없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작품이 평균율이다. 나에게 처음 이 곡을 가르쳐준 빌헬름 캠프의 음반은 국내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 대신 러시아의 대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를 이 음반을 통해 만나보시기를 권한다.

이 곡이 서양 건반 음악의 구약성서라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신약성서라는 비유가 있다. 특히 그의 후기 소나타들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듯한 영적인 감동을 준다.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는 기술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탁월하다.

폴리니가 20세기 후반기를 풍미한 대가였다면 21세기 전반기 피아노계의 패자는 소콜로프가 아닐까? 최근 발매된 그의 실황 음반은 슈베르트의 즉흥곡과 베토벤의 소나타, 브람스의 소품 등을 담고 있다. 충격적인 명연주다. 음과 음의 연결 하나하나가 새롭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곡들이 새로운 노래를 들려준다.

결국은 노래다. 많은 경우, 악기 연주도 사람의 목소리로 부르는 것과 같은 노래를 지향한다. 카라얀이 지휘하고 파바로티가 노래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꺼내 듣는다. 파바로티의 라 보엠은 1992년 1월, 뉴욕 메트 오페라에서 직접 보기도 했는데 이때 그는 이미 정점이 지난 상태였다. 이 음반에서의 파바로티는 인생의 절창絕唱을 들려준다. 카라얀이 빚어내는 오케스트라의 노래도 황홀하다.

오페라를 매우 잘 썼던 작곡가로 모차르트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의 오페라는 ‘돈 조반니’다.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들, 극적인 사건들이 아름다운 음악과 어우러진 최고의 걸작이다. 카라얀은 모차르트와 같은 잘츠부르크 출신이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부흥시킨 주인공이다. 나는 그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돈 조반니’를 즐겨 듣는다.

모차르트는 주로 이탈리아어로 오페라를 썼지만, 19세기 바그너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는 전혀 새로운 음악 언어를 개척하며 독일어 악극으로 판타지 세계를 구축했다.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반지의 제왕>에 영감을 준 ‘니벨룽의 반지’는 그 끝판왕이다. 음반으로 14장, 실제 공연으로는 중간에 2일간 휴식을 포함해 6일이 걸리는 대작이다. 칼 뵘 지휘의 바이로이트 실황은 절대 반지의 마력을 음악으로 구현한 명반이다.


바그너를 존경했던 브루크너는 바그너적인 소리로 교향곡의 양식을 채웠다. 8번 교향곡의 거대한 일렁임과 특히 3악장 아다지오의 찬란한 폭발은 모르고 한평생 살다가 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예술이다. 깊고도 긴 호흡의 첼리비다케는 듣는 이를 엑스터시로 인도한다.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였던 브루크너와 달리, 빈 국립가극장의 지휘자였던 말러는 교향곡의 틀에 세상의 온갖 소리와 삶의 희로애락을 적나라하게 담아냈고, 현대 도시인의 정서에 더욱 가까웠다. 2번 교향곡 ‘부활’을 아바도가 지휘한 루체른 실황 음반에는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까지 수록돼 있어 더욱 다채로운 음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브루크너와 말러에게서 교향곡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베토벤에 닿는다. 그의 짝수 교향곡은 홀수 교향곡들보다 인기가 덜한데,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4번을 들어보면 짝수 번호 교향곡에 대한 선입견이 뿌리째 뽑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악보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실황의 기적이란 어떤 것인지, 그만큼 잘 보여주는 지휘자도 없다.

복잡한 것들에 시달린 마음과 귀를 달래고 싶을 때, 나는 피에르 푸르니에의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 아르히브Archiv 음반을 꺼낸다. 푸르니에의 첼로가 부르는 노래는 기품 있고 단아하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에도 듣기 참 좋다.

Posted in 2016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나의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