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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음악에 담기다

 

영원이 된 마지막 리사이틀
1950년 9월 16일, 빅토르 위고의 고향인 프랑스 브장송에서 젊은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34세의 루마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Dinu Lipatti.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은 모두 오늘의 이 공연이 리파티의 마지막 공연임을 알고 있었다. 백혈병을 앓고 있던 그는 이미 혼자 앉아있을 수도 없을 만큼 병세가 악화한 상태였기 때문. 170cm 남짓한 작은 키의 창백한 환자가 힘겹게 무대로 걸어 나오자 청중은 기립 박수로 환호했으나,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그의 처참한 상태에 가슴 졸이며 무대를 응시했다.
하지만 첫 곡 바흐 파르티타 1번의 천진한 선율이 공연장을 채운 순간, 아무도 그가 죽음을 앞둔 환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연이은 모차르트 8번 소나타까지 리파티는 고통과 슬픔, 두려움 대신 오로지 맑은 희망을 유려한 터치로 노래했다. 그리고 마지막 곡인 쇼팽의 왈츠. 평소 리파티는 쇼팽의 20여 곡의 왈츠 가운데 14곡을 자신만의 순서대로 배열해 연주했고 특히 마지막에는 언제나 왈츠 2번을 연주했다. 바로 이 마지막 곡만을 남겨두고 리파티는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려놓지도 못할 만큼 기진맥진한 상태가 됐다. 그는 건반을 응시하며 침묵을 지키다 무대를 떠났으나 잠시 뒤 기적적으로 다시 걸어 나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모두가 숨죽이며 기다린 곡은 당연히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인 쇼팽 왈츠 2번. 그러나 리파티가 연주한 곡은 뜻밖에도 바흐의 칸타타 ‘주 예수는 나의 기쁨’(BWV 147).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젊은 피아니스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지상에 남기는 작별 인사였다. 가까스로 연주를 마친 리파티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2개월이 조금 지나 세상을 떠났다.
이날의 공연을 담은 음반에는 아쉽게도 바흐의 칸타타가 수록돼 있지 않다. 리파티가 마지막 곡을 앞두고 무대를 떠났을 때, 녹음하던 음반사 스태프들은 그가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모두 철수했기 때문. 하지만 그가 진통제에 기대 힘겹게 연주해 낸 음악들은 죽음 앞에 겸손하고 일상의 행복에 충실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자신의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죽음을 대면했고, 바로 그 순간을 음반을 통해 영원히 각인했다. 이 모노 음질 속에 담긴 리파티의 마지막 연주는 그가 목숨과 맞바꾼 예술혼이자 삶의 애착을 자극하는 각성제와 다름없다. 초라하게 반복되는 우리네 일상에서 이만큼 진정성 있는 위로도 드물다.

심약한 청년의 내면이 담긴 교향곡
‘운명 교향곡’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베토벤의 5번 교향곡. 베토벤 자신이 1악장 서두의 주제를 두고 ‘운명의 문은 이렇게 두드린다.’고 설명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기원 탓이다. 하지만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하는 1악장에 몰입하면 저 신화 같은 기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상을 짓누르는 온갖 근심과 슬픔은 사라지고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심장이 튀어나올 듯한 극한의 긴장을 체험하게 된다. 청력을 잃어가며 극심한 조울증을 앓고, 한때 자살까지 결심했던 심약하고 예민한 30대 청년의 내면이 고스란히 반영된 탓이다.
베토벤이 서거한 다음 해인 1828년 파리에서 열린 공연에서는 한 여가수가 공연을 듣던 중 졸도했다는데, 이 음반을 들으면 다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확신할만하다. 클라이버는 우아한 귀족 집단인 빈 필의 단원들로부터 가장 원시적이고 말초적인 소리의 질감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현악군의 거친 연주가 발군인데, 활을 긁어댄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극도의 도취와 흥분이 매번 고스란히 전해진다. 클래식이 록rock보다 자극적인 쾌감을 줄 수 있음을 증명한 음반.

Posted in 2016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나의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