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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자유의 충만함을 기다리며

 

 

격정의 봄은 반드시 온다… ‘봄의 제전’
SF 고전, 스타트렉Star Trek에는 ‘마인드 멜드’Mind Meld라는 게 나온다. 두 사람간의 정신을 융합해 서로 통하게 만드는 기술인데,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고 이성만을 신봉하는 뾰족귀 ‘벌컨족’(vulcan: Spock이 유명)이 사용한다. 연대기적으로 봤을 때 가장 초기 시대인 2,100년대를 다루는 TV 시리즈 엔터프라이즈에는 벌컨인 여자 장교 트폴이 마인드 멜드를 통해 그간 억제하던 날것 그대로의 감정에 노출되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쓰러진다.
이성과 합리를 추앙하는 현대인에게 원시적 감성이 넘실대는 스트라빈스키의 초기 명작,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이 준 충격은 이와 비슷했다. 강렬한 생경함에 놀란 청중의 야유와 욕설이 1913년 초연初演을 뒤덮었다. 프로이트가 발표한 『꿈의 해석』에서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스트라빈스키는 꿈에서 봤던 원시의 제의 의식을 발레곡으로 구체화했다. 봄이 되자 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젊은 여자를 제물로 바친다는 내용으로 멜로디가 아닌 변화무쌍한 리듬을 앞세워 전개한다. 그것도 5, 7, 11박자라는 기괴한 변박자로 말이다. 게다가 다운보잉(down bowing: 현을 위에서 아래로 당기는 연주법으로 센박자를 표현)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악보에는 호치키스 쇠침처럼 생긴, 다운보잉의 기호(⊔)가 난무한다. 명반은 많지만 명장, 안탈 도라티Antal Dorati가 말년에 디트로이트 심포니와 남긴 앨범은 군계일학이다. 그가 젊었던 시절, 미니애폴리스 심포니와 만들어낸 연주도 수작이다.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앨범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연주실황이 궁금하다면 유튜브에서 프랑수와 자비에 로스Francois-Xavier Roth의 BBC Proms 2013년 실황을 시청하면 된다. 군무群舞에 가까운 다운보잉과 관악기들의 블로잉은 주술과 같다.

격정은 파도처럼… ‘볼레로’
발레곡하면 또 떠오르는 곡이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다. 모리스 라벨은 스트라빈스키의 친구이기도 하다.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음악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볼레로’는 변화무쌍한 ‘봄의 제전’과 달리 동일한 리듬에, 그 흔한 조바꿈도 끝나기 직전을 제외하고는 없다. 대신 강력한 무기가 있다. 크레셴도cresendo다. 음의 세기를 점점 세게 하라는 뜻의 셈여림표, 크레셴도가 무한 반복된다. 위력은 대단하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TV에서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라는 영화를 봤다. 철들고 다시 영화를 보기 전까지 영화 내용은 눈곱만큼도 기억나지 않았다. 웃통을 벗은 무용수가 변화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끈적끈적한 음악에 맞춰 끊임없이 춤을 춘다는 것만 뇌리에 박혔을 뿐이다. 그러나 크레셴도의 영향은 강렬했다. 이후 그 괴상한 소리는 뇌리에서 결코 떠나질 않았으니 말이다. 그만큼 음악이 감각적이라는 얘기다. 인상주의의 거장, 라벨은 감각적인 느낌의 소리를 물감 뿌리듯 명징하게 시각화했다. 동일해 보이는 소리는 꿈틀대듯 미묘하게 증폭된다. 청자의 심박 수는 치솟는다. 나의 ‘넘버 원 명반’은 샤를 뒤투아의 몬트리올 심포니 앨범이다. 인터뷰도 해봤기에 더욱 애틋한 뒤투아 영감님은 능수능란하게 소리를 공명시킨다. 뒤투아의 스승이자 보스턴 심포니의 명장, 샤를 뮌슈의 연주는 대표적 명반이며, 정명훈의 라디오 프랑스 녹음도 감동적이다. 연주실황이 궁금하면 유투브를 검색하자.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공연 실황은 한마디로 쾌속질주다.
공통점이라곤 오직 발레라는 키워드뿐일 것 같은 ‘볼레로’와 ‘봄의 제전’은 힘과 정열을 담뿍 담고 있다. 이제 봄이다. 원시적 힘을 느끼고 싶다. 그 속에서 희망과 자유가 솟아나기를 기대한다.

Posted in 2016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나의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