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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본부장은 왜 쩔쩔맸을까?

 

기자 서너 명 있는 조그마한 인터넷 언론사라고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1인 미디어라도 ‘미디어몽구’처럼 훌륭히 시대를 기록하는 사람이 있고, 수백여 명의 기자를 거느린 언론사라도 정부나 대기업 눈치만 보면서 받아쓰기를 주로 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품질이다. 그런데 이 언론사는 언론사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기사를 써왔다.

모텔에서 ‘언론플레이’ 하는 남자
취재 당시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주소지로 가보니 이 언론사는 서울 외곽 아파트의 상가 건물 2층에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어 황폐한, 서너 평 규모의 사무실에 명목상의 주소를 두고 있었다. 1층 슈퍼마켓 주인은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수년 동안 상가 2층에 세를 든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녹취록을 제공한 내부 고발자에게 확인한 바로도 이 언론사의 ‘기자’들은 서울에 사무실이 없어 한동안 강원도의 모텔에서 한두 달씩 기거하며 ‘기사’를 송고했다고 한다. MBC 백종문 본부장 같은 ‘우호적’ 취재원이 한번 만나 술이나 밥을 사준다고 해도 서울로 갈 차비가 없어 쉽게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런 언론사였다. 녹취록에서도 드러나듯 언론사의 편집국장은 스스로 ‘언론플레이’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고, 노골적으로 청탁도 하고 나중에는 청탁이 잘 안 됐다고 짜증도 부렸다. 기자라기보다는 업자에 가까웠다. 더 나가면 사기꾼이 된다. 그런데도 MBC 백종문 본부장은 이 ‘언론인’들을 잘 응대했다. 대놓고 청탁을 하고 청탁이 잘 안 이뤄졌다고 화를 내는 ‘언론인’에게 쩔쩔매며 존대조로 ‘박 국장’에서 ‘박 주필’이라고 격을 높여 부르기도 했다.

MBC의 미래전략본부장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한국의 2대 공영방송인 MBC의 본부장이 길거리 호객꾼처럼 기사를 거래하고 외주 프로덕션 사업을 통해 돈벌이를 하려고 작정한 듯한 이에게 ‘박 주필’이라고 존칭하다니…. 백 본부장은 왜 그렇게 격에 맞지 않게 공손해야만 했던 것일까? ‘박 주필’이 스스로 뉴라이트연합 실장을 역임하고 여당 대통령 후보 캠프 등에 있었다고 말해 좀 ‘쫄았던’ 것일까? 아니면 백 본부장은 평소에 모든 ‘언론인’을 그렇게 공손하게 대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백 본부장은 “최승호 PD나 박성제 기자는 증거 없이 잘랐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았는가?”라고 거듭 질문하는 필자에게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다가 MBC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실에 다 이르러 “내보내.”라고 한마디 짧게 내뱉는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일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박 주필’이 MBC 노동조합에 적대적이고 사 측에는 우호적인 기사를 제공해 MBC 사 측은 그 대가로 콩고물을 떨궈주려 했던 것일까? 녹취록을 보면 그렇게 해석할 여지는 충분했다. 이들의 만남 이후 진행된 사실도 일부 그런 정황을 뒷받침하기는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MBC의 본부장이었다면 사람을 가려서 만날 것 같다. 말도 더 조심해서 할 것 같고, 어처구니없는 청탁이 있다면 단호하게 자르고 그런 자리를 만든 부하 직원을 크게 나무랄 성싶다. 특히 자신이 기자나 PD, 언론인 출신의 MBC 최고위 간부라면 MBC의 품격을 위해서라도 조심했었을 것 같다. 사실 ‘박 주필’을 굳이 만나지 않더라도 백 본부장은 계속 잘 나갔을 사람이 아닌가? 오히려 아쉬운 쪽은 영세한 인터넷 언론사의 편집국장이었다. 그러나 녹취록으로만 보면 백 본부장이 을이고 ‘박 주필’이 갑이었다.

유유상종
그런데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그렇게 격에 맞지 않는 짓을 한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내가 어리석었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언론사로서의 품위나 품격 따위가 자리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 세상이다. 특히 권력이 방송을 장악했다고 인정받는 한국의 공영방송가에서 최근 수년 동안 그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언론인으로서의 품성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자질이 학습되고 단련됐을 게 분명하다. 그 자질이란 비유하자면 영화 <내부자들>에서 나왔던 것처럼 서로가 발가벗고 성기 자랑하며 딸 같은 처자들과 이 밤을 낄낄거리다가도 아침에 동이 터 넥타이를 매고 대중 앞에 서면 일순 근엄하고 격조 높은 얼굴로 점잖게 연설할 수 있는 뻔뻔함 또는 위선이랄까…. 그 정도는 돼야 후배들을 자르기 위해 모의하고 본인의 출세욕을 같잖은 이념으로 ‘튜닝’ 하는데도 큰 무리가 없을 게다.
버려야 한다. 지금은 언론인으로서의 명예나 자존심 따위는 버려야 공영방송사 최고위 간부로 영전할 자질의 기본이 갖춰지는 세상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 보니 서로 격이 맞았다. 모텔에서 ‘언론플레이’ 하는 남자와 MBC의 미래전략본부장. 딱 어울린다. 세상은 그렇게 유유상종이다.

Posted in 2016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