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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살아온 날들, 그래도 지금이 제일 좋더라…

서정곤 선배는 SBS 영상취재팀의 ‘도인’으로 불렸다. 선배를 생각하면 SBS가 여의도 사옥에 있던 시절이 떠오른다. 사무실에 높다랗게 걸려있던 ‘정론 영상正論 映像 구만리九萬里’라는 서예 액자와 함께. 그렇게 붓글씨를 쓰고, 대금을 불며, 느리고 조용한 말투로 이야기하시던 그분이 요즘은 엄청 바쁘시단다. 엥? 그럴 리가? 2013년 여름에 퇴직하셨으니 채 3년도 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그래서 여의도 사무실로 찾아갔다. 밝은 얼굴로 무심했던 후배를 반겨 주셨다. 

“인터넷 카페서 사진 교육… 회원 3만 명 돌파”

요즘 많이 바쁘다고 하시던데 무슨 일을 하시는지요?
“바빠요. 놀러 다니느라(웃음)…. 최근에는 남미 여행을 한 달간 다녀왔어요. 사실은 ‘한국사진영상’이라는 사진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어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시작한 동호회인데, 지금은 회원이 3만 명 가까이 돼요.”

대단하시네요.
“‘한국사진영상’ 동호회는 은퇴 후의 여생을 사진이라는 취미 활동을 통해 즐겁고 건강한 노년을 보내자는 취지에서 만든 건데, 지금은 너무 규모가 커져 버렸어요. 이곳에서 사진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나름 맞춤식 사진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포토스쿨’이라고 할 수 있지요. 수강생들은 주로 40, 50대 중·후반이고 70, 80대 분들도 일부 참여해 배우고 있습니다. 수강료는 무료고요. 주로 디지털 카메라를 쉽게 사용하는 방법부터 사진 예술이 무엇인지, 어떤 소재가 작품이 되는지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초보자들이 포토스쿨 수료 후에 작품 사진을 찍을 때는 보람도 클 것 같은데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기능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촬영 대상과의 교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그분들이 작품 수준을 떠나 대상 속에 자신의 지나온 삶을 투영시키고, 또 작품에 삶의 흔적들이 녹아 있음을 발견할 때는 스스로 감탄하게도 되고, 한편으론 흐뭇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듣고 보니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하시는 것 같아요.
“일단은 동호회 운영과 포토스쿨이 우선이고요. 얼마 전에는 출판사 등록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출판사지, 출판사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에요. 전시회나 작품집을 만드는데 외부 출판사에 맡기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제작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들이 있어서 등록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하다 보니 우리가 가진 수많은 사진 콘텐츠를 활용하는 차원에서 최근에는 『한사영 문화예술』이라는 잡지도 계간지 형태로 발행하고 있어요.”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

일을 열정적으로 하셔서 그런지 에너지가 넘치고 행복해 보입니다.
“방송사에서 일할 때, 특히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무엇보다 내 작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데 지금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사진 지식에 목말라 하는 사람에게 내 짧은 지식을 나누어 주고, 그분들과 사진 찍으러 다니는 것이 너무 좋아요. 나도 그렇고 회원분들도 함께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이뤄간다는 기분도 들고요.”

최근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방송 종사자들의 역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카메라기자라는 직업도 마찬가지고요.
“일정 부분 동의를 합니다. 제가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을 시작할 때인 80년대 초반은 흑백 TV에서 컬러 TV로 전환되는 시기였어요. 그 당시는 카메라기자들만의 분명한 영역이 있었어요. 특히 ENG 장비의 희소성으로 인해 뉴스 영상을 찍는 일이 특별한 일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지금은 ‘찍는’ 일이라는 것이 너무 일반화돼 있어요. 휴대폰으로도 어느 정도 유용한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시대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진입은 카메라기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많은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변화 속에는 위기와 기회라는 양면성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기와 기회라….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세요.
“예전에는 카메라라는 장비만 있으면 생존할 수 있는 세상에서, 이제는 카메라만으로는 생존하기 힘든 세상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얼핏 듣기로는 기사도 로봇이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결국 누군가는 찍고 또 누군가는 써야 하는데, 그 ‘찍고’, ‘쓰는’ 일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면,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찍고 써서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것들을 기획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면에서 방송기자, 특히 카메라기자라는 직군은 멀티미디어가 중요시되는 최근의 미디어 환경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선배님은 은퇴 후의 삶이 최고의 황금기라고 하시는데, 은퇴 후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인생 이모작이라는 말은 좀 어색하긴 하지만, 은퇴 후 삶에 대한 접근방식이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보통 노후에 필요한 자금이 얼마고, 그것을 어떻게 충당할까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보다는 은퇴하고서도 나는 건강할 것이고, 또 건강하다면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사는 데 많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닌 것 같더라고요.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충분히 즐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분야는 생소한 분야이고, 생소한 분야를 잘해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요. 그래서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얼마의 수익이 발생할 수도 있고요. 은퇴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우선 끊임없이 남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또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후배들에게도 막연한 걱정으로 두려워하기보다는 긍정적인 자세로, 자신감을 갖고 좋아하는 일을 지금부터 찾아 나서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Posted in 2016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선배 잘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