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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싸움은 헛되지 않았다”

일시_2016년 2월 2일   장소_서울 상암동 MBC

 

2012년 MBC 파업을 이끈 두 주역은 4년이 지난 지금도 MBC 앞을 지키고 있다. 상암동 사옥 앞에 천막을 치고 다른 해직자들과 농성을 벌이고 있다. 회사 측이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집행부 전원을 현업 부서로 발령 낸 것에 항의하며 타임오프(노조 전임자의 근로시간 면제) 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엔지니어 출신인 정영하 전 위원장과 시사교양 PD 출신인 강지웅 전 사무처장은 이제 해직 5년째에 접어들었다. 천막에서 오간 두 사람의 대화를 싣는다. _편집자 주


 

강지웅 전 사무처장 ∷ 상암동 와서 천막에 앉아있으니 기분이 어때요?

정영하 전 위원장 솔직히 천막치고 농성한다고 해결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하죠. 현실을 너무 잘 아니까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어떤 불의에 저항할 때, 이 저항이 불의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 때만 저항한다면, 할 수 있는 저항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런데 MBC의 상황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고 계속 하향일방이잖아요. 파업에서 복귀한 우리 조합원들은 계속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안에서 고통받는 조합원들 보면 괴로워”

강지웅 ∷ 제가 일했던 시사교양국은 완전히 해체돼버렸으니까…. 거기 있던 60명 가까운 PD들이 일부는 예능에 가 있고, 일부는 엉뚱한 부서에 편입돼 있고 어지간한 프로그램들은 다 없애버렸고…. 어떻게 보면 유랑자 신세가 돼버렸죠. 가슴 아프네요.
보도국 기자들도 마찬가지죠. 50~60명의 기자가 현업에서 배제돼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엉뚱한 사업 부서를 만들어 기자들을 계속 보내버렸고 그 빈자리를 투명하지 않은 채용 절차에 의해서 기자들을 마구잡이로 뽑았죠. 80명 정도의 기자들이 새로 들어와 정치부, 경제부, 사회 1·2부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더라고요. 점점 상황이 파업 때보다 더 최악의 상황으로 추락해가는 것 같아서 괴롭죠. 차라리 밖에 있으면 그런 꼴 안 보고 사니까 상관이 없는데 안에 있는 동료 선후배들이 고통 받으니까.

정영하 ∷ 해직된 이후 뭐가 제일 안 좋았냐면 소송을 하면서 과거의 일을 복기해야 한다는 것이죠. 공정방송이 어떻게 무너졌고, 공정방송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이 어떻게 저항해 막아냈느냐 하는 기억을 소송하면서 하나하나 다 끄집어내야 하잖아요. 그게 너무 잔인했는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우리 조합원들은 또 새로운 걸 겪고 있는 것 아닌가.’ 옛날 기억에, 현재의 안 좋은 기억에, 앞으로 더 좋아지지 않겠다는 암담한 미래에… 선·후배 동료들은 진짜 괴로웠겠다는 생각에 불편했어요. 그런데 어디 가서 은둔 생활하면 모르겠는데 재판도 받아야 하고, 출석해야 하고, 후임 집행부들이 저항하다 밀리고…. 그런 상황을 보면서 참 괴롭더라고요.

“MBC 파업은 합법”… 잊을 수 없는 국민 참여 재판

 

강지웅 ∷ 그래도 소송과정에서 공정방송이라는 화두에 대해서 치열한 논박이 있었는데 새로운 경험이긴 했어요. 사실 안에서 고통 받고 있는 많은 동료, 선·후배한테 그 과정의 치열함이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싸운 게 결코 헛된 건 아니었다는 것을…. 나도 때론 잊어버렸던 것, 그런 것을 판사가 일깨워주기도 하고. 1심의 국민 참여 재판에서도 그랬고요.

정영하 ∷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새벽 4시까지 했죠. 그건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강지웅 ∷ 검찰이 엄청 필터링을 했잖아요. 당시 배심원 뽑을 때 “신문 뭐 보냐?”고 물어서 한겨레 본다고 한 사람들은 다 배제한 후 배심원 7명을 추렸죠. 처음에 검찰의 논고를 들을 때는 우리를 쳐다보는 배심원들의 눈빛이 결코 곱지 않았는데 밤새 우리의 이야기도 듣고, 쌍방의 얘기를 들으면서 결국 우리의 손을 들어줬잖아요. 그 과정이 제일 감동적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국민의 방송이 되겠다는 것,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슬로건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죠.

정영하 ∷ 국민에게 그 사건이 자세히 설명된 것은 아니에요. 제가 봤을 때…. MBC가 파업을 170일간 하긴 했지만 <무한도전>이 한때 안 나가고 방송을 못 봤다는 것을 주로 기억할 뿐이지, 그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고 공정방송이라는 가치 때문에 이렇게 길게 파업을 했다는 의미를 각인시키지는 못 한 것 같아요.

강지웅 ∷ 업무방해 형사재판 받을 때 인상적이었던 게 판사분이 저한테 여러 번 물어봤잖아요. “대체 공정성이란 게 뭐냐? 회사도 공정을 얘기하고 노동조합도 공정을 얘기하는데 대체 공정이 뭐냐?” 그때 저희 쪽 증인으로 나섰던 모 선배 PD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PD수첩> 팀장도 하셨던 분인데 “공정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프로그램 할 때 되면 PD, 작가, 조연출, FD, 스텝까지 모여서 계급장 떼고 서로 치열하게 얘기했다. 내가 팀장이라고 더 힘이 실리는 것도 아니고, 그럴듯하고 맞으면 그게 정도正道가 됐다. 자기는 이게 공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판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마찬가지로 보도국 기자들도 데스크 지시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장 기자가 취재해봤는데 이렇더라고 말하면 짓밟아버릴 수는 없었던 풍토가 있었죠. 그게 MBC의 풍토였는데 지금은 사전 검열도 사치예요. 뭔가 프로그램으로 좀 해보려고 하면, 시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상한 사업 부서라든가 본사 밖인 광화문, 구로, 수원, 인천으로 발령을 내니….

“MBC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에 반드시 책임 물어야”

정영하 ∷ 예전의 노사관계를 되짚어보면 치열한 공방도 하고, 협상하다가 자리 박차고 나오기도 하고, 성명도 내고 했어도 ‘당신! 지금 우리한테 위법적인 걸 하는 거야?’라는 생각은 서로 안 했었죠. 굳이 법이다 뭐다 의존할 필요도 없었고, 상식선에서 ‘이 정도면 내가 이걸 양보할 수밖에 없는 거다’, 회사도 노조가 저렇게까지 나오면 ‘이건 회사가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거다’라고 생각하는, 서로에 대한 격格이 있었어요. MB 정권 이후 사회적 분위기도, 국회도 덩달아 모든 노사관계도 변질된 것 같아요.
법의 잣대를 악용하고 법의 허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데만 ‘올인’하니까. 지금은 법을 모르면 판판이 당할 수밖에 없죠. 그리고 나중에 법정에 가서 호소할 수밖에 없고…. 회사는 돈도 있고 시간도 있으니 그런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 시간을 보내고, 상대가 힘 빠지길 기다리고…. 백종문 녹취록에서 나온 것도 그렇죠. 일단 해고하고 나중에 돌아오면 그때 받아들이고, 시간은 5,6년 걸릴 테고….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에요?

강지웅 ∷ 소송 비용도 엄청나게 들 텐데.

정영하 ∷ 수십억? 아니 백억 가까이 될지 모르죠. 나중에 다 모아보면…. 해직자들이 승소하면 회사가 줘야 할 월급만도 수십억은 될 텐데….

강지웅 ∷ 저는 MBC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경영진에 대해서 횡령이든 배임이든 법은 잘 모르지만, 다 하고 싶어요. 가압류도 걸고,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어요. 지금 경영진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MBC 안에서 아무도 얘기 안 하니까 그냥 넘어갈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Posted in 2015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해직언론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