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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자는 [ ] 이다

 

 

 

‘역사를 남기는 기록자’, ‘권력을 감시하는 파수견’, ‘입법·행정·사법에 이은 제4권력’…. 기자를 지칭하는 여러 표현이다. 여기에 몇 년 사이 강력한 경쟁자(?)가 하나 늘었다. ‘기레기’. 이런 수식어들에 한편으로는 자부심을, 다른 한편으로는 자괴감을 느껴왔을 방송기자들은 스스로의 역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거기서 어떤 정체성을 읽어낼 수 있을까?


‘회사원’ 기자
직종과 연차를 불문하고 심층 설문에 응한 방송기자들은 대부분 위 제목의 빈칸을 ‘회사원’이라는 단어로 채웠다. 자신이 전문 직업인이라기보다는 회사원에 가깝다는 답변들이 압도적이었다. “자기 회사의 이익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고, 회사 차원의 입장과 배치되는 보도는 나갈 수 없는”(13년 차 취재기자)데다 “통신사나 조간 신문을 베끼거나 참고하고 타사들이 찍은 영상을 모니터하며 없는 그림을 채워내기에 바쁘”(5년 차 취재기자)기에 “회사원 중에서도 생산성이 좋지 않은 회사원에 가깝다고 생각”(10년 차 취재기자)한다는 것이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역할에 대한 인식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회사원과 다르다는 기자 고유의 정체성은 안팎의 억압으로 보도가 제약을 받으며 사회적 공기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희석되기 마련이다. 정부 입장과 상충된다며 데스크가 기획기사를 정부 해명으로 ‘물타기’할 때 “자괴감과 함께 자기 검열을 강요받은 듯한 느낌에 시달리고 심지어 이 뉴스를 발제하면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6년 차 취재기자)을 느끼기도 했다. 데스킹 과정에서 대놓고 압력을 행사하진 않지만 “수위를 조절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연차가 올라갈수록 ‘너도 왜 그런지 알잖아’ 하는 식으로 기사를 슬쩍 빼는 상황도 잦아”(13년 차 취재기자)지고, “대기업과 관련된 비판 보도를 하고 난 뒤 홍보실 직원이 회사로 찾아오고 나면 항상 기사와 영상을 수정하는 일”(5년 차 취재기자)을 되풀이하면서 방송기자의 모습은 기자가 아닌 회사원을 닮아가고 있었다.
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방송기자의 역할과 관련해 자신의 이념적 성향이 어떤지도 물었다. 이념의 틀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좌우할 수 있고 취재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 대상의 수가 제한적이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응답자 중 다수는 진보 혹은 진보에 가깝다고 답했다. 중도라고 답한 경우에는 “지금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의식적으로 약자나 소수 편에 선 취재와 보도를 하려고 생각한다.”(13년 차 취재기자)고 답했다. “생각은 진보라고 할지라도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15년 차 촬영기자)에 방송기자들 대부분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진보와 보수 어느 쪽이건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가치 판단이 들어가기 때문에 평소 생각이 (취재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6년 차 취재기자)고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개인의 희망에 따라 아이템을 제작하는 일은 거의 없고 위에서 발주하는 아이템을 주로 하기 때문에 결과물에 성향이 반영되는 경우는 드물다.”(10년 차 취재기자)는 응답도 있었다.
‘전문직’으로서의 교육은?
방송기자가 제 역할을 하려면 전문 지식의 획득도 필수적이고, 기자가 전문직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문직이 다른 직업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처럼 자기 분야만의 전문 지식을 갖췄음을 입증하는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자에게는 자격증이 없지만, 언론학 교과서들은 기자의 위상에 대해 높은 수준의 지식과 기술, 윤리의식 등이 요구되는 준 전문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기 위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이며 강도 높은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현실은 어떠할까?
연차가 높을수록 “승진을 앞두고 실시되는 직급 연수가 전부”(20년 차 취재기자)였다거나 “받은 교육이 없거나 기억하지 못할”(17년 차 취재기자) 정도라는 부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현실적으로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휴식 이외의 시간과 관심의 투자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처럼 들린다.”(15년 차 촬영기자)는 푸념에 공감하지 않을 방송기자는 드물 것이다. 연차가 낮아지면 사정은 좀 나았지만, 역시 “특강식, 단발성 교육으로(…) 전문성 향상을 위한 지원이라고 하기에는 태부족”(13년 차 취재기자)으로 “일시적이어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15년 차 취재기자)는 반응이었다.
답변자들은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교육”(13년 차 취재기자)과 아울러 “영어 쓸 일이 의외로 많은데 사내에서 외국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10년 차 취재기자)는 요구도 있었다. 특히 기사 쓰는 기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자 직업윤리에 대한 교육, 잘 된 보도와 의미 있는 보도를 많이 보고 배울 기회가 필요하다.”(6년 차 취재기자)고 답했다.

Posted in 2016, 한국의 방송기자는?, 2016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