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한국방송기자대상 지역보도부문 뉴스상_수사기관 개인정보 무단조회 행정소송 승소_광주MBC 김철원, 이정현 기자

수석이에게

 

내 친구 수석이, 잘 있니? 고등학교 때도 쓰지 않던 편지를 남자가 남자에게, 그것도 나이 사십이 다 돼 쓰려고 하니 새삼 쑥스럽다. 열없음을 무릅쓰고 이런 공개편지를 쓰는 건 너한테 자랑하고 싶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야.

한국방송기자대상이라고 하는데 이건 방송기자라면 누구나 받고 싶어 하는 상이란다. 또 방송기자연합회와 한국방송협회가 매달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선정하는데 이 상도 받기 굉장히 힘든 상이야. 뭐, 이달의 방송기자상 받고 그달이 지나면 동료들이 ‘저번 달의 방송기자야, 어디 가냐?’라고 놀리기도 하기도 하더라마는…. 그만큼 받기 힘든 ‘이달의 방송기자상’ 수상작들 1년 치를 모아서 그중에서도 하나를 꼽은 것이라니 얼마나 치열했겠어? 어때, 내가 자랑할 만하겠지? 그래서 처음 수상소식을 접했을 때 기쁘기도 기뻤지만 글쎄, 나는 네 생각이 나더라고?

20년 전, 1996년 3월 29일 너를 죽음에 이르게 한 국가폭력과 내가 취재했던 공권력의 폭력이 포개져서였을까? 친구의 20주기 기일을 앞두고 그동안 너희 부모님 한 번 찾아가지 못했던 내 무심함이 부끄러워서였을까? 내가 기자가 됐을 때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저널리스트가 되겠다고 한 다짐이 생각나서였을까?

얼마 전 김영삼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도 난 네 생각이 먼저 났어.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 확보’를 외치며 거리를 점령했던 서총련 총궐기는 신입생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나간 집회였었지. 그런데 숙소에 돌아와 보니 충격적인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어. 그 집회 대열에 너도 있었는데 그만 죽었다는 거야. 너무 놀라 울지도 못하고 달려간 네 시신이 있다는 국립의료원의 살벌한 풍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쫓기다 숨진 너는 아직도 스무 살 청년인데, 너를 죽게 한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는 그로부터 스무 해를 더 살다가 저세상으로 떠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전직 대통령이고, 민주화 인사고 뭐고 하는 말들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더라고.

장례식에서 네 관을 들었을 때 속으로 나는 ‘좋은 세상’ 만들겠다고 너에게 약속했어. 그리고 그 뒤에 광주MBC 기자가 됐을 때도 네 생각 하며 ‘좋은 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지. 네가 죽었을 때 신문이고 방송이고 제대로 된 보도를 한 데가 없어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기억도 내가 이 길에 들어선 이유이기도 해. 그리고 이번에 한국방송기자대상을 받게 된 아이템인데 경찰관이나 검사들이 국민 개인정보를 자기들 마음대로 훔쳐보는 걸 취재하면서 힘들었을 때도 네 생각하며 힘을 냈어.

정보공개 청구하고 행정심판 제기하고, 그것도 안 돼 행정소송을 내가 직접 제기했는데 이건 뭐 막막함 그 자체더라고. 정보공개 거부당할 때야 당연히 예상을 했으니 뭐 그러려니 했는데 행정심판까지 거부당하고 나서 이걸 소송으로 가야 하나 고민할 때 남들은 다 포기하라고 했을 때, 심지어 내가 도움을 요청한 민변의 변호사들조차 실익이 없다고 손을 털 때는 정말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어. 그런데 그 때 네 생각을 했어. 그래서 힘을 내서 소장도 쓰고 어찌어찌하다보니 소송에서도 이기고, 너한테 이렇게 편지도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 수사기관들의 개인정보 불법조회 실태 보도로 탄 상들을 꼽아볼까? 2012년 10월부터 첫 보도 이후 5년 동안 이달의 기자상, 국제앰네스티언론상, 올해의 방송비평상, 한국방송대상, 이달의 방송기자상, 그리고 이번에 한국방송기자대상까지 6개나 되네? 가히 그랜드슬램이라 할 만하지. 이게 다 니 덕분 아니겠어?

성은 노 씨요. 이름은 수석. 수석은 수석인데 노(No) 수석이어서 반 1등은 못할 것이라는 운명이 니 이름 속에 들어 있다고 친구들이 놀렸었잖아? 과연 그 농담처럼 네가 우리 반 2등, 내가 3등 하면서 고3을 보냈었잖니? 내가 죽어라고 책을 파는 스타일이라면 넌 쉬는 시간에 잠자고 친구들과 농구하면서, 놀 거 다 놀고 공부하는데도 공부를 잘하는 천재형이었어. 그러면서도 친근하고 다정한 성격 때문에 친구들 누구랄 것 없이 다 너를 좋아했었지. 성적을 놓고 경쟁하는 입장에서 난 너의 그 여유와 천재성이 부러웠지만 이상하게도 호승심好勝心이 들지는 않았어. 대신 법대에 진학해 ‘인권변호사’가 돼 어렵고 힘없는 사람 돕겠다고 했던 네 포부가 멋지다고 생각했지.

네가 죽은 지 20년이 흘렀고, 나는 불혹의 나이가 됐다. 이번에 큰 상을 받게 됐지만 네게 한 약속대로 나는 ‘좋은 기자’가 되려면 아직도 먼 것만 같고, ‘좋은 세상’이 온 것 같지도 않는구나. 너랑 한 약속 지키기 위해 계속 노력할게. 그러니 너도 하늘나라에서 도와주고 응원해주렴. 참, 얼마 전에 광주 대동고 우리 동창생들이 졸업 20주년 행사도 가졌고, 선생님 모시고 20년 만에 반창회도 했는데 네 얘기 꺼내니까 다들 자기가 수석이랑 이렇게 친했다고 서로 경쟁하듯이 말하더라고? 그래서 올해 돌아오는 3월 29일, 네 20주기 기일 때 애들이랑 같이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쉬고 있는 너 오랜만에 찾아가기로 했단다. 그럼 그 때 보고 누구랑 제일 친했는지 따져보자고 친구.

김철원 기자

 

 

故 노수석 약력

1976년 11월 23일 광주 출생

1995년 2월 광주 대동고등학교 졸업

1995년 3월 연세대학교 법학과 입학

1996년 3월 29일 ‘김영삼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서총련) 결의대회’에서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의해 사망

1999년 2월 95학번 동기들과 함께 연세대학교 명예졸업장 받음

2003년 9월 9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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