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을 품고 사는 반백의 청년_YTN 우장균 기자

 

 

 

 

 

 

 

 

 

 

 

일시_ 2015년 10월 19일   장소_ 상암동 YTN   인터뷰_ YTN 이경아 기자(해외방송팀)

 

중년 남자 둘이 한 달간 남미 여행을 간다고 하면 대략 이런 질문이 쏟아질 것이다. “아니, 왜 하필 남자와?”, “집에서 허락은 해주나?”, “회사는 어쩌고?”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우장균과 현덕수는 해직 6년을 맞은 10월 6일, 남미로 떠났다. 한 달이 좀 못 되는 기간 동안 4개 나라를 돌아보고 귀국한 지 2주일 만에 YTN 해직 사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우장균은 돌아왔고 현덕수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 뒤 우장균은 모종의 결심을 하고 두 사람의 남미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로 한다. 그의 세 번째 책 『남자도 자유가 필요해』 (북플래닛)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따끈따끈한 새 책을 처음 받아본 순간의 느낌은 어땠나요?
“첫 번째 자식은 소중하고, 두 번째 자식은 덜 소중하거나 하지 않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세 번째 책 역시 세 번째 자식을 낳은 것 같은 환희와 설렘이 있었죠. 이 책을 정말 진실하게 쓰려고 노력했고, 독자들과 교감할 수 있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맞이했어요.”

여행 가기 전에는 (주변의 부추김에도 불구하고) 책을 쓸 생각이 없어 보였는데요?
“(여행기처럼)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쓸 자신이 없어서…. 그런데 동시에, 여행을 좀 의미 있게 하려면 출판이 안 된다 해도 뭔가 기록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었죠. 그런데 여행 다녀온 뒤 11월 말, 해직 사태 이후 6년 2개월 만에 대법원 판결이 났어요. (이 책은) 동반자였던 현덕수를 위해 썼어요. 초고를 덕수에게 보냈는데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는 친구는 아니지만, 내심 출간을 바라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냈죠. 덕수가 만약 ‘뭐 이런 걸 내요?’ 하는 반응이었다면 이 책을 출간하지 못했을 거예요.”
해직 동료와 함께한 배낭여행… 남미 민중의 삶을 만나다

마치 대학생처럼 배낭여행을 했던데, 한국 중년 남성의 서바이벌 능력으로 버틸 만하던가요?
“항공권은 마일리지로 끊었고요. 하루 평균 3, 4만 원 썼을까? 덕수는 여유가 있다 해도 비싼 음식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니 현지 서민의 밥을 먹으며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죠. 2천 원도 안 되는 닭다리 하나, 감자튀김 몇 개도 우리에겐 진수성찬이었고 오히려 그것이 좋았어요. 힘들었던 건 잠자리. 시간을 벌어야 해서 여행 중 8일 밤을 야간버스에서 보냈거든요. (그는 야간버스에서 카메라도 잃어버렸다.) 그래도 6년 넘는 해직 기간을 버티는 것보다는 쉽던데요? (웃음) 46살 덕수와 51살인 나, 죽기 전에 남미라는 미지의 땅을 밟는 것은 마지막 아닐까 하는 예감이 우리를 이 여행으로 이끌었던 것 같아요.”

남미와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닐 텐데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있었나요?
“덕수가 ‘남미의 꿈’이라는 제목의 A4 열 장이 넘는 여행계획서를 건네주면서 혹시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물었죠. 깊이 공부한 건 아니었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 『총.균.쇠』에도 나오는 페루의 카하마르카, 잉카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스페인 정복자에게 처형된 그곳에 가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볼리비아에 있는 ‘체 게바라의 길’도 궁금했죠.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고 중앙은행 총재까지 지낸 사람이 다시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볼리비아 라이게라에서 숨졌잖아요. 이 두 곳은 제 가슴 한편에, 또는 머릿속 기억 저편에 갖고 있던 남미에 대한 어떤 동경 같은 것 아니었을까 싶어요.”
아들과의 여행을 꿈꾸는 아버지… 추억을 책에 담고파

책 속에 우유니 사막을 함께 여행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아들과 함께 그런 여행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우리 아들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싶죠. 지금 군대에 간 지 두 달 좀 넘었는데 얼마 전 집사람한테 전화를 했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난생처음으로 ‘엄마 사랑해요.’라고 했다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굉장히 기뻤어요.
남미에서 만난 그 이탈리아 부자처럼 함께 여행하게 된다면 아들에게 이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당위를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이 정글 같은 사회에서 잘살 수 있도록 코치를 하고 싶긴 하지만, 그게 다 잔소리 아니겠어요? 그보다는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아 둘만의 여행을 책으로 남기고 싶어요. 오십 넘은 제 친구들도 대부분 그렇다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이상하리만큼 좋았던 기억만 떠오르더군요. 만약 내 아버지가 우리가 함께한 추억을 책으로 남기셨다면 요즘 읽으면서 여러 번 울었을 것 같아요. 나의 역사를 내 후손들에게 남기는 것이기 때문에 책에는 거짓을 쓸 수가 없어요. 오롯이 진실을 담을 수밖에 없죠. 설사 그것이 불편하다 하더라도…. 나중에 우리 아들이 그 책을 보게 된다면 그의 삶이 윤택해지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요.”
의지를 실천한 사람들… 풍경보다 아름다운 그들의 흔적

김구 암살을 둘러싼 소설 『회중시계』도 그렇고, 역사 속 인물에 관심이 많으신데요. 어떤 매력이 있어서 빠져들게 되는 건가요?
“자신의 모든 것, 목숨까지 버리면서 어떤 의지를 행동에 옮긴 사람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나이를 먹으니 그런 사람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져요. 한국이라면 내 소설 속 김구 선생이나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들…. 그건 어떻게 보면, 나는 그럴 자신이 없기 때문이겠죠. 쿠데타 세력에 저항하다 숨진 아옌데 칠레 대통령이나 혁명가 체 게바라, 그들의 흔적을 둘러본 것이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본 것보다 오히려 더 가슴 뿌듯했어요. 왜 그렇게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 다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그 뜻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복직과 함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도 일 년이 다 되어가네요. 바쁜 생활 속에 순간순간 떠오르는 남미의 추억이 있나요?
“글쎄요. 우유니 소금 사막과 티티카카 호수, 이런 아름다운 자연은 머리를 맑게 해주지만 나중에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인 것 같아요. 리마의 어느 카페에서 앞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덕수의 얼굴, 말도 안 통하는 가운데 심심산골 라이게라까지 함께 갔던 다국적 여행자들, 발파라이소에서 내게 말을 걸어온 일본인 3세….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그 당시의 풍경과 함께 오버랩 되어 뇌리에 남아있어요.”

 

오십 넘어 깨달은 글 쓰는 재미…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길

글을 쓰고 세상에 내보낸다는 것, 어찌 보면 대중 앞에 벌거벗겨지는 느낌도 들 것 같아요. 전문 작가도 아닌데 이렇게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대학교 때 저는 불꽃처럼 살고 싶었어요. 한순간 타오르고 사위는, 먹물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서 어떤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았고 학위 같은 것도 필요 없다고 혼자 다짐했었죠(웃음). 그런데 해직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정말 갈 곳이 없었어요. 해직 동료인 조승호 기자가 ‘사람이 영원히 사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식을 낳는 것이고 또 하나는 책을 쓰는 것이다.’란 말을 했어요. 평범한 말이지만 인간 조승호가 한 말이니 귀담아 들어야겠다 하고 20대의 치기 어린 결심을 꺾었죠.
사실 이번 책은 처음 썼던 원고와 비교하면 출판사의 요청으로 제 개인사가 나중에 많이 보태졌어요. 그러고서 다시 보니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거예요. 내가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썼던가 싶을 정도로. 약간 쑥스러웠지만 글 쓰는 묘미를 나이 오십이 넘어서 알게 된 거죠. 요즘 저를 소설가, 작가라고 부르는 후배나 친구들이 있는데 그러지 말라고, 두드러기 난다고 말합니다(웃음). 영어로 ‘쓰는 사람’이 ‘writer’잖아요. 우리말로 하면 기자도 되고 작가도 되는 것 아니겠어요? 모든 이야기는 내 마음과 머리와 몸을 통과해서 글로 옮겨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 자기 자신을 벌거벗겨 놔야죠. 그런 부끄러움은 기꺼이 감수할 생각이에요. 그렇게 해서 내 아들딸에게, 또 우리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게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보람 아닐까요?”

 

Posted in 2015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