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취재할 것도, 배울 것도 많다_뉴스타파 심인보 기자

솔직히 말해서 가기 전에는 기대가 크지 않았다. “나도 기자 생활 할 만큼 했는데 뭘 더 배워?” 하지만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세상은 넓고 훌륭한 기자들은 정말 많다는 걸 절감했다.
KBS에서 10년 동안 일하며 국제부 근무를 2년 가까이 했다. ‘순회 특파원’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출장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그러나 세계 언론의 상황에 대해 느낀 바를 말하자면, 당시의 2년보다 이번에 다녀온 4박 5일의 GIJC 2015(Global Investigative Journalism Conference 2015)에서 느낀 것이 훨씬 많다. 이번 회의를 주최한 GIJN(Global Investigative Journalism Network: 글로벌 탐사 저널리즘 네트워크)에는 100여 개 나라, 5천여 명의 기자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동북아에서는 뉴스타파가 유일한 회원사다.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이번 총회는 GIJN의 9번째 총회로 900여 명의 기자가 참석했다.

첫 번째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당연히 그들의 ‘기사’다. 사실, 국제부 근무를 한다 해도 해외 언론의 탐사보도 기사를 접할 일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발생 뉴스나 화제성 있는 뉴스를 소화하기에 급급하고, 이에 따라 국제부 기자의 주요 임무는 AP나 로이터 같은 통신사들의 기사를 재가공하는 데 국한되기 때문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굵직한 탐사 보도물이 여러 건 소개되었다. 푸틴의 비자금 조성을 전방위로 추적한 로이터-노바야 가제타의 공동 프로젝트나 (비자금 규모가 수십조 원이고, 5개국 이상에서 자금 세탁이 이루어졌다.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노바야 가제타에서는 지금까지 6명의 기자가 살해됐다.) 자국 통신회사가 개발도상국에서 벌인 인허가 로비를 추적한 스웨덴 공영 방송의 보도(뇌물만 1조 원이 넘는다. 총사업비가 아니라 뇌물만! 보도 이후 통신회사의 대표는 사임했고, 통신회사는 문제가 된 7개국의 해외 지사를 모두 매각했다.)는 그 규모 면에서나 취재력 면에서나 감탄스러웠다. 이렇게 ‘얘기되는’ 기사를 쓴 기자들의 얘기를 직접 듣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자극이 되었다.

감시 받고, 협박 받고… 굴하지 않는 기자들
두 번째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소명 의식’이다. ‘저널리즘은 직업이 아니라 소명이다.’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어쩌면 한국의 기자들은 손발이 오글거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면 자조적인 냉소와 함께 한숨을 쉬거나.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본인이 쓴 기사 때문에 구속을 당한 기자라면? 아니면 함께 기사를 쓴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기자라면? 언론 환경이 특히 억압적인 중남미나 러시아, 아프리카의 기자들은 자신의 기사와 그 기사로 인해 받은 여러 가지 고통, 즉 감시받고, 협박받고, 기소되고, 재판받고, 구속되고 급기야 동료가 살해당한 고통들을 담담히 얘기했다.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 멕시코의 한 여기자에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신은 그렇다 치고, 당신의 가족을 보호할 수단이 있는가?” 그 기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것이다.”라고 답했다. 한국의 기자들은 어떤 위협을 받고 있는가? 올바른 기사를 위해 무엇을 버릴 수 있는가?

절반 이상이 데이터 저널리즘 세션
세 번째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자세’다. 이번 총회에서는 모두 160개의 세션이 마련됐는데, 그중 절반 이상인 84개 세션은 데이터를 얻고, 처리하고, 표현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데이터를 중시하는 저널리즘의 세계적 추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러한 세션에 들어오는 기자들의 연령대였다. 한국으로 치면 말단 기자들이나 리서처들이 처리할 업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러한 ‘데이터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백발의 노老기자들이 잔뜩 들어와 공부하고 있었다. 자리가 없는 강의실에서는 서서 듣기를 마다치 않았다. ‘검은 머리의 노인’들이 저마다 자리를 꿰차고 앉아 이른바 ‘게이트 키핑’에만 매달리는 한국 언론사의 풍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뉴스타파 발표에 큰 관심
뉴스타파도 이번 GIJC에서 두 건의 발표를 했다. 첫 번째는 뉴스타파가 구축해 나가고 있는 저널리즘의 새로운 모델과 관련된 발표였고, 두 번째는 지난 8월에 업로드 된 <친일과 망각>에 대한 발표였다. 여러 나라에서 온 기자들이 적지 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다. ‘좋은 저널리즘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다는, 그래서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는 그런 안도감 말이다. 그리고 기대감 역시 느꼈다. 이들과의 공조를 통해, 국제화된 부정부패와 비리를 추적 보도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한국 등 아시아는 불모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회의에 참석한 아시아 기자들은 아시아 지역 탐사 기자들 사이의 연합체 구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세상은 넓고 취재할 것은 많다. 그리고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Posted in 2015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별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