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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본 이 시대 언론의 모습은?_KBS 김석 기자

세계적 탐사 저널리스트 존 필저John Pilger가 ‘저널리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라 평한 『미디어렌즈』의 저자들은 우리시대 언론의 현실을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꼬집었다. “미디어는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보여주는 창에 페인트를 칠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권력의 수호자들’Guardians of Power. 그게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으리라.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에 크게 빚지고 있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2005년)에서 통제와 금기가 지배하는 공포정치의 시대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언론인 국영방송 BTN의 존재 이유는 다름 아닌 체제 유지다. 권력은 왜곡방송을 ‘지시’하고, 언론은 거기에 ‘복종’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1989년 KBS 노동조합이 펴낸 『5공하 KBS 방송기록』이란 책을 보면, 방송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왔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례가 필요한 것일까.

 

침묵의 사기극에 동조해온 언론

최고의 독립 언론인으로 추앙받는 I. F. 스톤의 평전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2012년)에는 이런 말이 실려 있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관리들이 거짓을 유포하면서 자신들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때, 나라에는 재앙이 닥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재앙’을 목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논란 속에서도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정책이 강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공영방송을 비롯한 주류언론의 동조와 침묵이 있었다. 임기 내내 아무 말도 없던 언론이 뒤늦게 정부 정책의 실패니,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니, 혈세 낭비니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면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문제는 나를 포함해 상당수의 언론인이 이 사기극에 알게 모르게 동조자 역할을 해왔다는, 불편하고 거북한 사실이다. 아마 많은 언론인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도리어 손가락질을 해내며 비난을 퍼붓는 이들도 있을 게다.
무엇이 영화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흔히 ‘영화 같은 일’이란 표현을 쓴다. 그런데 언론이나 언론인을 다룬 영화들을 섭렵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건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현실이 ‘영화’인지 ‘현실’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1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를 보라. 몇백 번을 되물어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었다. 사건이 난 지 1년이 지나도록 진실 규명에 아무 진전이 없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까지 겹쳐 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영화란 말인가. 그래서 영화 속 언론과 언론인의 모습을 돌아본다는 것은 또 다른 렌즈를 통해 우리 언론의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자는 뜻이기도 했다. 나 자신도 주류 언론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기자들이 ‘기레기’로 불리는 참담한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언론인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책을 써내려가는 과정은 영화 속 수많은 주인공들에서 부끄러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제대로 된 언론(인)이 존재해야 할 이유
하지만 현실이 온통 못 견디게 비참한 것만은 아니다. <굿나잇 앤 굿럭>(2006)에서는 광포한 매카시 선풍에 맞선 저널리스트의 용기를, <베로니카 게린>(2003)에서는 죽음 앞에서조차 굴복하지 않았던 기자 정신을,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2009)에서는 권력자의 총칼보다 저널리스트의 펜이 가진 힘이 더 강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서문에 밝혔듯, 영화 속에 그려지는 언론의 모습은 결코 각본가나 연출가의 상상 속에서 갑자기 탄생한,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정의롭든 비열하든 영화가 다루는 언론의 모습은 가장 정확하고 생생한 시대상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언론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 속에서 언론은 때로는 불편부당한 진실을 전하는 정의롭고 용기 있는 모습이기도, 또 한편으로는 돈에 굴복하고 권력에 굴종하는 나약하고 추악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는 모범 답안이 되기도,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기도 한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불가해한 무엇일 때, 그때야말로 제대로 된 언론(인)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절실해지는 게 아닐까.

Posted in 2015년 5·6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별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