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지역보도 부문 뉴스상_병사 자살로 내몬 군 상담관_OBS 양시창 기자

많은 사람들이 너를 돕고 있으니 힘을 내라 조 일병!”

“대대장님 때문에 죽고 싶습니다. 제발 대대장님께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대대장 당번병인 한 병사가 병영 상담관에게 털어놓은 말입니다. 그 이후 어떻게 됐을까. 병영상담관은 이 말을 고스란히 대대장에게 전달합니다. 대대장은 바로 다음 날 이 병사를 향해 “너가 내 인생을 망치려 하느냐”며 또다시 폭언을 쏟아냅니다. 결국 이 병사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습니다. 간신히 살아나긴 했지만 죽음보다 더한 상처를 입고 아직 정신병동에 누워있습니다. 상담관이 오히려 병사를 죽일 뻔 했다는 제보 한 마디를 듣고 정신이 아뜩해졌습니다. 제2의 감시자가 돼 병사를 죽음 문턱까지 몰고 간 병영상담관과 부하의 심적 상태는 안중에도 없는 대대장. 군 복무 중인 20대 청년의 극단적 선택이 이해되고도 남았습니다. 구조적인 문제였습니다. 반드시 기사를 써야겠다는 전투의지가 타올랐습니다.

철옹성 군 부대역시 뻗치기가 답

마음이 앞섰지만 취재를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아는 거라곤 몇 사단에서 벌어진 일인지가 전부. 군과의 지루한 줄다리기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철통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군에서 이런 정보를 알려줄 리 만무한 데다 피해 병사의 이름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방법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부대 앞 ‘뻗치기’부터 시작했습니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부대 정문 앞에서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도 했고, 인근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해당 부대 병사와 간부들에게 접근했습니다. “아 그 대대장 소문났어요. 조 일병 사건도 이미 다 보고됐다던데…” 뜻밖의 조력자를 만난 건 엄청난 행운이었습니다. 조력자를 통해 몇 명의 부대 관계자와 연락이 닿을 수 있었고, 해당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던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조 일병이 현재 국군병원 정신병동에 입원 중이라는 사실과 대대장 이름을 알아냈을 때 이제 됐구나 싶었습니다. 대대장과의 직접 전화 통화를 통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끼워 넣을 수 있었습니다. 사단 공보장교도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어느 정도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또 지난 해 국감에서 병영상담관 자질 문제를 거론한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의원실을 통해서도 해당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요청해 자료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꼬박 열흘 동안 매달린 끝에 묻혀 질 뻔 했던 조 일병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고, 국방부 출입기자로서 제도적 문제에 천착했습니다.

전문성없는 병영생활 전문 상담관

‘병영생활 전문상담관’ 제도는 ‘2005년 GOP 총기난사 사건’ 이후 국방부가 만든 정책입니다. 군인 출신이 아닌 민간 전문가가 상담을 해 계급의식이 깔려있는 기존의 권위적인 상담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취지인데, 이번에 제도의 허점이 드러났습니다. 수준 이하 상담관이 제도의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그 이면에는 상담관 자질보다 인원수 늘리기에만 급급한 국방부 정책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상담관 수를 두 배 정도는 늘려야 국방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연대급 1명 배치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원자가 많지 않다는 게 정책 시행 초기부터 따라다닌 국방부의 고민입니다. 국방부는 그 해결책으로 상담관 응시 기준을 두 차례나 낮췄는데 이러다보니 당초 취지에 맞는 ‘전문’ 상담이 이뤄질리 만무합니다. 취재 결과 현재 병영상담관 중 상담이 가능한 자격증을 갖춘 인원은 전체의 절반에 불과했습니다. 자격증이 없거나 상담과 무관한 자격증을 갖춘 상담관도 20%가 넘었습니다. 전문성 있는 상담관을 채용하려면 그 전문성에 맞는 대우를 해주면 쉽게 해결될 문제인데 국방부는 갈수록 응시 자격 기준만 낮추고 있습니다.

대대장은 검찰 송치, 조 일병은 기사회생

보도 이후 대대장은 헌병 조사를 받고 군 검찰로 송치됐습니다. 처음엔 조 일병 한 명 뿐이었던 피해자는 보도 이후 5명으로 늘었습니다. 그 중에는 해당 대대 중대장을 포함한 간부 출신도 3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 일병에 대한 피의자 신분 조사는 없던 일이 됐습니다. 병영상담관에 대한 헌병 조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육군은 헌병 조사가 끝나면 형사 처벌과 별개로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운영에 관한 훈령] 12조 지침대로 징계를 내릴 방침이라고 알려왔습니다. 또 올 해부터 상담전문가 자격증이 없어도 군 생활 10년 이상 경력자들에 대해서는 응시가 가능하다는 내부 방침은 없어지게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를 돕고 있으니 힘을 내라 조 일병!”

국군 수도병원 정신과병동에 입원 중인 조 일병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2시간으로 한정된 면회 시간도 직계가족 밖에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라도 만나볼 요량으로 화요일에 해당 병원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그 날은 마침 부모님이 오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조 일병 의사를 묻지 못한 채 보도하게 됐는데 첫 보도가 나간 뒤 기분 좋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조 일병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조 일병의 담당 의사가 이 뉴스를 조 일병과 함께 시청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곤 많은 사람들이 너를 돕고 있으니 힘을 내라고 말해주었다고 전하고, 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조 일병이 눈물을 글썽였다는 소식을 듣자 고생이 다 날아간 듯 했습니다. 조 일병이 하루 속히 마음의 병을 훌훌 털고 일어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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