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자를 인터뷰 하는 이유-오마이뉴스 이영광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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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일시_ 2015년 2월 17일 장소_ 서울 목동 방송회관
인터뷰_ MBC 조현용 기자(본지 편집위원)

1천2백 시간의 이동, 2천여 시간의 녹취록 작성, 그리고 기사 작성까지. 지난 2009년 2월 17일 첫 인터뷰를 시작한 이영광 시민기자가 2백 회 넘는 인터뷰를 위해 보낸 시간이다. 그가 인터뷰를 시작한 지 딱 6년이 되는 날, 이번에는 그를 인터뷰 대상으로 삼았다.
2백 번의 인터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1급 뇌성마비를 극복한 이 시민기자는 매번 인터뷰를 위해 자택이 있는 전주와 서울, 왕복 5시간을 오간다),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게 되셨고 그동안 어떤 것들을 느끼셨나요?
“보통 언론사의 기자들에게 인터뷰는 외과 의사에게 수술처럼 특별한 일은 아니죠. 하지만 인터뷰를 전문적으로 하는 저에게 2백 회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이나 주제를 정해 심층적인 인터뷰를 지속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첫 인터뷰를 하고 오늘이 딱 6년이에요. 짧은 시간이 아니죠. 예전에 CBS 변상욱 기자의 미니홈피 방명록에 글을 남겼었는데요. 변 기자님이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언제든지 오라고 하셔서 목동 CBS 방송국을 찾아갔었죠. 처음에는 라디오에 나오는 사람하고 만난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그러다 흥미가 생긴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지금까지 175명 정도를 만났더라고요. 매주 일을 하다 보니 특별히 느끼는 건 없어요. 매주 마감을 지키느라 정신이 없죠. 다만 돌아보니 지난 6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6년 동안 175명 인터뷰”

인터뷰 대상을 보면 주로 언론인들이 많은데요(이 시민기자는 CBS 변상욱 기자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해직 언론인들과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등을 인터뷰했다), 특히 고초를 겪고 있는 언론인들이 많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민주주의를 위해서라고 할까요? 언론 자유 없이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 아니 잘 돌아가는 나라가 없다고 봅니다. 어떤 권력이든 사람이든 비판과 견제 없이 스스로 잘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해직 언론인의 문제는 언론 자유와 직결돼 있고, 제가 그들을 만나온 이유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은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지금이 군사독재 시절도 아닌데 해직 언론인이 나온다는 사실이 서글프죠.”

방송뉴스를 많이 보시나요? 요새 방송뉴스를 어떻게 보세요?
“일단 현재 지상파는 전혀 안 봅니다. 2012년 초까지 MBC 뉴스를 봤죠. 어려서부터 뉴스를 많이 봤고 익숙한 기자들도 많았는데, 이제 방송에 나오지 않는 기자들이 많아서 안타까워요. 물타기식의 전파 낭비성 보도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렇다고 종편 뉴스를 보지도 않았어요. 사람들 사이에 ‘개념 없이 종편 본다.’는 정서가 있었거든요(웃음). 그러다 손석희 사장이 JTBC 앵커를 맡게 되면서 호평을 받더라고요. 그래서 종편 뉴스도 보기 시작했죠.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것을 다루고 의제 설정을 잘하는 것 같았어요.”

33-1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 대상은 어떤 분이었나요? 뿌듯했거나 안타까웠던 순간을 꼽자면?
“지금껏 175명을 만났어요. 모두가 기억에 남고 에피소드가 있죠. 그런데 단 한 명을 뽑는다면 첫 인터뷰 대상(CBS 변상욱 기자)이겠죠. 그분으로 인해 제가 계속 인터뷰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인터뷰의 형식이나 내용 등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고요. 첫 인터뷰를 했을 때의 짜릿함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그렇지만 딱히 뿌듯했던 순간은 잘 떠오르지 않아요. 제 인터뷰에 스스로 만족했던 순간이 별로 없거든요. 다만 2013년 한 기자와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데요, 인터뷰 내용 때문이라기보다는 제가 고민하는 기사의 형식 때문입니다. 그전까지는 주요 내용을 간추려 인터뷰 기사의 도입부, ‘리드’로 뽑았거든요. 그런데 그 기사는 제 해석으로 시작했어요. 기사에는 각자의 색깔이 묻어나잖아요. 그런 점이 뿌듯했죠.”

“세월호 인터뷰는 계속 할 겁니다.”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역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인터뷰했던 때인 것 같아요(이 시민기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관계자 인터뷰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 하면서 아이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런데 그분들에게는 아이를 기억하는 것이 고통이잖아요. 안 물어볼 수도 없으니 제게도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일이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 관련 인터뷰는 끝내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기획 시리즈로 계속 다뤄보려고 해요.”

앞으로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시는지, 시민기자로서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세요. 또 방송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인터뷰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정치인 같은 유명인들은 제가 인터뷰하지 않아도 어디서나 많이 찾죠.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방송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 어려운 질문이네요. 지금 방송뉴스의 상황이 어렵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그 안에서 체제에 계속 순응만 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동아투위 전 위원장 정동익 선생님이 인터뷰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선배들은 무조건 파업을 하거나 저항하기 보다는 중요한 기사가 한 줄이라도 나가게 하려고 애썼는데 요즘 후배들은 그러지 않는 것 같다고요. 그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같은 세상에 기자라는 일을 하는 것이 어렵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중요한 기사를 한 줄이라도 방송에 내보낼 수 있게 노력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는 사람이 기자인 것 같고요.”

Posted in 2015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