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한국방송기자대상 뉴스부문_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 단독보도_KBS 윤진 기자

윤 일병 사망 사건, 군 혁신 계기 되길

취재 후기를 쓰기 위해, 한창 사건 취재를 하던 6, 7, 8월 당시를 돌아봅니다. 군은 취재하기도, 기사 쓰기도 어려운 상대였습니다. 부대 내 폭행, 축소 수사, 정보 차단, 취재 불허 등 민간인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따로 있었습니다. ‘군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다른 기준과 잣대로 판단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였습니다. 그때마다 취재한 팩트에 자신이 있다면, 나머지는 보편적 상식으로 판단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기사가 보도될 때마다 사회적 반향이 일파만파 커지는 것을 보며, ‘성역은 없다’던 선배들의 충고가 옳았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의 취재는, 지난 6월에 발생했던 동부전선 GOP 총기 난사 사건에서 시작됐습니다. 임모 병장이 동료 부대원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10여 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당시 군 당국은 임 병장이 군대에 적응하지 못 한 ‘관심병사’였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임 병장은 부대 내에서 심각한 왕따 피해를 겪고 있었고, 그 울분을 참지 못 해 일을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왜곡됐거나 묻혀 버린 사건들이 더 있겠다 싶었습니다.

인권 관련 시민단체, 군 사건 전담 변호인 등을 찾아다니며 수소문을 했습니다. 그러다 군 법무관 출신인 한 변호사를 만나게 됐습니다. 법조팀에서 근무할 때 알게 된 분으로, 군 사건이 있을 때 종종 자문을 구하던 변호사였습니다. 첫 마디가 “더 황당한 사건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임병들한테 죽을 때까지 맞다 죽은 불쌍한 병사를 군이 ‘만두 먹다 기도가 막혀 죽었다’며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큰 사건이구나, 쉽지 않겠다, 였습니다.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를 뒤집는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사 전문가들이 해 놓은 수사 과정과 결과를 엎어야 했고, 의료 전문가들이 밝힌 사망 원인을 엎어야 했습니다. 국가기관이 설마 이런 엄청난 짓을 했을까 싶어, 처음엔 저 자신도 반신반의하며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취재 결과에 대해 큰 기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막연했지만, 당장 손이 닿을 수 있는 영역부터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공소장을 비롯한 사건 기록을 확보하고, 전문가들을 수소문했습니다. 군 사건을 많이 다뤄본 변호사들을 찾아가, 사망 원인을 조작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가능하다면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 건지, 군 사건 수사 절차와 보고 계통 등을 전방위로 취재했습니다. 폭행 장면 목격자 진술과 부검감정서, 의무기록지가 다 확보된 뒤에는 병원과 법의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사망의 직접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취재하면 할수록 본질 명확해져

취재를 하면 할수록, 사실 관계가 명확해졌습니다. 퍼즐 맞추기처럼, 한 조각 한 조각 아귀가 딱딱 맞아들어 갔습니다. 윤 일병 몸에 나타난 멍자국, 부검 기록, 죽기 직전 보인 이상 행동들, 응급실 의무기록지, 십수 명의 증인들…곳곳에 사건의 답을 알려 줄 힌트가 있었는데도, ‘군대 내 전문가’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전문성 부족에 따른 과실이었는지, 의도적인 왜곡이었는지를 끝까지 밝혀내지 못 한 것은, 제 한계였고, 제가 윤 일병에게 끝내 떳떳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군 사법시스템의 한계와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이 문제 역시 제게 새로 던져진 숙제입니다.

양식 있는 전문가가 세상 바꾼다

양식을 가진 전문가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평소 제 지론이 확인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제 눈엔 온통 암호문으로만 보였던 부검감정서와 의무기록지를 간단명료하게 판독해 주신 법의학자, 사망 사건 수사 관련 자문을 해 주신 경찰, 부검감정서와 부속 사진을 검토해 준 변호사, 사건 기록과 재판 진행 관련 조언을 주신 법조인 등 전문가들의 힘으로 기사가 나올 수 있었고, 윤 일병의 억울함도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동료들의 원망이 따를 수 있는 민감한 내용들이었는데도, 오직 ‘진실’을 위해 용기를 내어 주신 이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불철주야 이 사건에 매달려 열정을 쏟은 모 변호사의 노고를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건 취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낮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시간도 잊고 메시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변호사와 저는 24시간 내내 이 사건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눈을 뜨면 윤 일병의 원혼이 주위를 맴도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12월2일 국회에서 2015년도 예산안이 통과됐습니다. 300명의 의원들이 병영 문화 개선을 위해 기존에 반영된 330억 원 외에 230억 원이 증액됐다는 부분입니다. 제2, 제3의 윤 일병을 예방하는 데 저희의 기사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자 보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산을 조금 들여 눈에 보이는 근무 조건을 고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해 보입니다. 특히, 수사와 재판에 이르는 군 사법 제도 전반을 개편하지 않는 한, 군 의문사가 사라지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평생 풀어야 할 숙제라 생각하고, 남은 기자생활 치열하게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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