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역사다_전 MBC 보도국장 김상균 선배

36-1 방송기자가 만난

36-2 제목

36-3 김상균

일시_ 2014년 12월 16일   장소_ 서울 종로   인터뷰_ MBC 조승원 기자(정보과학부)

김상균 선배는 신군부에 의한 강제 해직이 언론을 질식시키던 1980년 입사 6년 차에 해직됐다. 무려 7년간의 해직기자 시절,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일하며 5공 정권의 언론 현실을 한발 비껴 목격했다. 민주화와 함께 복직된 이후 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보도국장 등을 역임했다. 지역 MBC 사장을 끝으로 30년 방송 생활을 마친 뒤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다변多辯이면서 달변達辯인 김 선배가 말이 아닌 글로 자신의 방송 인생을 정리했다. 『누구를 위한 뉴스였나?』라는 책이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걸까? 

“적어야 남는다”

이번에 나온 책을 보니, 20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생생히 적으셨던데요. 1991년 걸프전 발발 당시 보도국 분위기라든가 이런 건 다 어떻게 기억해내셨나요?
“내가 1975년에 방송기자로 입사를 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신문기자들보다 부족한 게 기록이더라고요. 방송은 슥 스쳐가 버리니까 남는 게 없죠. 그래서 내가 후배들한테도 그런 애기를 많이 했어요. ‘취재하며 겪은 일을 적어 놔라, 그게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이다’.”

36-4 뉴스기록은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것을 엮어서 책으로 쓰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요.
“어느 날 보니까 20년 전 뉴스까지 다 검색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MBC 홈페이지에 나왔더라고요. 그걸 열어봤더니 기가 막힙디다. 내 이름을 치니까 내가 만든 뉴스가 한 400개 정도 나와요. ‘이걸 바탕으로 하면 책 한 권은 나오겠다.’ 싶은 욕심이 생겨서 쓰게 됐습니다.”

먼 훗날에도 자기 기사를 열어볼 수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자기 기사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지는데요.
“네, 그래요. 나는 ‘20년 뉴스’ 같은 데이터베이스가 나왔을 때 ‘앞으로는 왜곡, 편파 보도가 확 줄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1970년대 같은 때는 말도 안 되는 리포트를 해도 시간이 흐르면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왜? 증거가 남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이름만 치면 과거에 어떻게 기사를 썼는지 다 남는데, 왜 편파·왜곡 보도를 하려고 할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안타깝게도 후배들 중에 일부는 지금도 그런 보도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 판단이 틀렸구나.’ 싶어요. 당장의 처신이 승진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10년 지나면 후배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자식들이 ‘아버지도 지록위마指鹿爲馬했어요?’ 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해요.”

“해직기자가 생길 줄 꿈에도 몰랐다”

책을 보면 1980년 해직 당시의 이야기가 눈에 띕니다. 어떻습니까?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도 해직기자가 있다는 게 말입니다.
“해직기자 문제는, 정말 나는 상상을 못했어요. 지금 이 세월에 그런 일이 또 벌어질 줄은 정말 몰랐죠. 그런데 어떡해요? 그렇게 해 버리는데…. 게다가 지금은 예전보다 한 술 더 뜨잖아요. 시용기자 채용 같은 시스템까지 도입해 아예 대타를 써버리잖아요.”

답답한 현실이 하나 더 있죠. ‘기레기’라는 신조어도 나왔단 말이죠.
“기레기라는 말, 굉장히 아픈 말이죠. 예전에 ‘땡전 뉴스’라는 말이 있었잖아요. 어떤 말이 생긴다는 건 이미 사회현상이라는 얘기이거든요. 그런데 그 말을 인정하지 않으면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지금 기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앞에서 기자회견하면 그것 따라가느라 바쁘잖아요. 그게 사실인지 사기인지도 모르면서. 앞에서 쇼를 하고 있는데도, 사실이라고 보도하기도 하고 말이죠.”
종편 출범 등 방송 환경도 많이 변했는데요. 요즘 방송뉴스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방송뉴스를 만들어내는 자세가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일단 들어요. 종편이 생긴 건 예를 들자면, 라이벌이 4개가 더 생긴 거잖아요.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라이벌 4명이 추가됐는데, 그렇게 변화한 환경에서 다른 방송사들이 뭘 했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해요. 내용은 놔두고 형식면에서라도 바뀐 것이 있냐는 말이죠. 고작 한다는 게 앵커가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이라든가, 그냥 리포트하면 될 것을 헬기 동원해서 하는 정도잖아요.”

‘방송뉴스 언어’에 대해서도 관심이 남 다르신 것 같더군요. 지나친 외래어 사용을 지적한 대목이라든가 ‘수동태를 쓰지 말자’고 한 대목은 후배기자들도 생각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우리 글 바로 쓰기』의 저자 이오덕 선생님 같은 경우는 ‘방송말’이라는 표현을 쓰시더라고요. 우리나라 학자들은 방송이랑 ‘말’이랑 같이 붙이면 애매하니까 방송용어, 방송언어라고 하는데 말이죠. 나는 ‘방송말’이라는 표현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색할 것 없어요. 방송에서 자주 쓰다보면 익숙해지잖아요. 또 수동태만 보더라도, ‘오늘 도로가 개통됐다’라고 보통 쓰는데, 이건 ‘개통했다’라고 쓰는 게 좋아요. 우리가 지금 수동태를 너무 많이 쓰거든요. ‘- 되다’ 라든지 ‘- 지다’ 같은 수동태 표현만 줄여도 ‘방송말’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후배 기자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으신지요?
“무엇보다 기록에 신경 쓰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역사를 의식하라는 것이죠. 그리고 회사를 떠나 방송사 기자들끼리 연대해서 기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세미나도 해보고 말이죠. 방송기자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가다가는 ‘그나마 기레기 소리 들을 때가 좋았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거든요.”

Posted in 2015년 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