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의 출근_YTN 우장균 기자

26-1 꼭지

28-1 6년만의 출근

28-2 우장균

오전 6시에 맞춰둔 스마트폰 알람시계가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아내는 아직 자고 있다. 6년 전 해고된 날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왔을 때도 그녀는 오늘처럼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노동조합 집회가 회사 후문에서 있었다. 엄두가 나지 않아 아내에게 해고된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나왔다. 점심 때 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인터넷에 YTN 기자 6명이 해고됐다는 기사가 있는데….”
아내가 본 기사에는 6명 이름이 모두 나오지 않았다.
“응, 그렇게 됐어.”
“그렇구나. 당신도 거기에 포함돼 있는 거구나.”
힘이 없지만 담담한 그녀의 목소리에서 위안을 얻었다.
6년 만의 출근 역시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3년 7개월 만의 대법원 선고는 해직기자 6명 모두의 복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3명은 복직 판결을 받지 못했다. 아내는 남편의 복직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해직되어 있는 동안 회사가 이사를 갔다. 출근길이 멀어졌다. 4호선에서 6호선으로 지하철을 갈아타야 한다. 하마터면 환승할 때 반대편 방향 열차를 탈 뻔했다. 며칠 지나면 이것도 익숙해질 것이다. 환승역 통로 계단을 내려가면 몸은 저절로 왼쪽으로 향하게 되겠지.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는 바람골이다. 거대한 빌딩들은 킹콩이 고향 집 언덕이라 생각했던 마천루를 닮았다. 빌딩 계곡 사이로 바람이 분다.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차가움이다. 얼굴을 때리는 겨울바람이 냉혹한 현실을 일깨워 준다.
이제 다시 전쟁이다.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이 고강도 전쟁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저강도 전쟁이다. 출근 자체가 전쟁이다. 복직기자 3명은 해직기자 3명의 몫과 함께 출근 전쟁을 할 것이다.

전쟁터에 내린 서설瑞雪
바람을 타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꽃이 빌딩 숲 사이를 날다가 포도鋪道위에 가볍게 내려앉는다. 그 모습이 종이비행기를 닮았다. 공정방송 투쟁을 할 때 구舊 사옥 옥상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하얀 양 날개에 ‘공정’과 ‘방송’이란 글자를 새긴 비행기가 서울역 방향으로 날아갔다.

회사 앞에 모인 조합원들은 서설이라고 했다. 서설이 복직기자 권석재와 정유신 얼굴을 젖게 했다. 6년을 기다려온 조합원들이 복직기자들을 뜨거운 가슴으로 환영했다. 권석재 기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 제가 흘리는 물은 눈眼물이 아니라 눈雪물입니다.”
해직기자 조승호와 현덕수의 어깨 위에도 눈꽃이 내려앉았다. 조승호 기자가 아침 일찍 출근한다고 하자 그의 딸이 물었다.
“아빠는 복직이 안 됐는데 왜 오늘 출근하는 거야?”
“응, 너도 학교에서 공부 잘하려면 예습이란 거 하지. 아빠도 나중에 회사 출근해서 일 잘하려고 오늘 출근 예습하러 가는 거야.”
조 기자와 그의 딸이 나눈 대화는 우리를 웃기며 울렸다. 그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 ‘귀도’ 같은 사람이다.

다시 징계위원회에 서다
28-3 복직6년 만의 첫 출근길. 40대에 해직이 돼 50이 넘어 돌아왔다.
조합원들은 꽃다발을 안겨줬고, 회사는 징계위원회 출두통지서를 보내왔다. 징계 사유는 2008년 8월에 일어났던 일들이다. 2천 3백일 전의 일들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6년 만에 돌아온 후배들에게 또 다시 창끝을 겨누겠다는 그들에게 도리어 연민을 느낀다.

삶은 공정방송 투쟁이란 구호처럼 추상적이지 않고 겨울바람처럼 구체적이며 냉혹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출근하며 추상적인 가치를 지켜갈 것이다. ‘언론자유’, ‘민주주의’가 새긴 바위를 두 손으로 밀고 정상으로 올라간다. 절대 권력의 장난으로 그 바위가 또 굴러 떨어져도 우리는 함께 그 바위를 밀어 올릴 것이다. 우리는 시지포스처럼 혼자가 아니다.

Posted in 2015년 1·2월호, YTN 3명 해직·3명 복직, 격월간 방송기자.